[에세이 오늘] 키케로의 ‘의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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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기원전 106년 오늘 라치오의 아르피노에서 태어났다. 로마의 정치가, 변호사, 철학자 등으로 유명한 그는 웅변과 연설에 뛰어났다. 집정관으로 일하던 기원전 63년 루치우스 세르주스 카틸리나의 역모를 적발해 로마를 위기에서 구했을 때가 정치가로서 최고의 시기였다. 청중의 분노에 불을 댕긴 카틸리나 탄핵 변론은 명문으로 손꼽힌다.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카틸리나여, 그대는 얼마나 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하는가."


이탈리아의 화가 체사레 마카리가 1889년에 그린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키케로'는 이때의 일을 소재로 삼았다. 배경은 원로원. 카틸리나는 화면 오른쪽에 홀로 앉아 있다. 키케로는 네 차례 연설로 카틸리나를 탄핵한다. 그가 연설하는 동안 카틸리나의 주변에 앉았던 원로원 의원들은 모두 자리를 옮겼다. 물론 그림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탄핵은 원로원이 아니라 유피테르 신전에서 있었다. 마카리는 키케로를 노인으로, 카틸리나를 청년으로 그렸지만 사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였다.

키케로는 카틸리나가 집정관인 자신을 암살하고 로마공화정을 전복할 계획을 세웠다면서 '원로원 최종권고'를 요구했다. 원로원의 승인을 받은 키케로는 반란 가담자로 지목된 인사들에게 신속하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다. 카틸리나도 토벌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키케로는 '국부'로 추앙받았지만 재판도 없이 혐의자를 처형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로마시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비판을 받고 기원전 58년 로마에서 추방됐다.


키케로는 그리스의 웅변술과 변론술에 정통했다. 변론술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완성자라고 불린다. 그의 문체는 라틴어, 이탈리아어뿐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등에 큰 영향을 줬다. 그의 글 가운데 '카틸리나 탄핵'을 비롯한 연설 쉰여덟 편, '국가론'과 '의무론'을 포함한 여러 철학서,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과 주고받은 서간문 등이 전한다. 이 중 '의무론'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존 로크 근대의 사상가들, 나아가 임마누엘 칸트의 윤리학에까지 영향을 준 고전이다.

이 책은 아테네에 유학 중인 아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편지 모음이다. 때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직후였다. 키케로는 아들에게 도덕적 삶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유익한 삶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보기에 인간에게는 ▲개인의 도리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도리 ▲자연의 일부로서의 도리를 다할 의무가 있다. 참된 삶은 이러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삶이요, '도덕적 선(善)'을 추구하는 삶이다. 키케로는 여러 의무 중에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도덕적 선은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용기를 잃지 않되 절제할 줄 아는 삶 속에서 실현된다. 키케로에게는 "무엇이든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라면 유익한 것이 아니고 지켜야 할 의무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유익하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선할 수 있다'라거나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지만 유익할 수 있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익한 것=도덕적 선'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붙잡아두는 것이 덕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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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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