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치는 'OO남 vs OO녀'…혐오민국, 어디까지 왔나
'맘충','한남' 등 혐오표현 사회적 갈등
혐오표현 장기간 노출 우울증 위험도
인권위, 혐오표현 차별·선동 정당화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 6살 아이가 있는 30대 직장인 여성 A 씨는 최근 휴일을 맞아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갔다가 일부 남성들에게 '맘충'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A 씨는 "평소 혐오표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내가 피해자가 되니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면서 "아이들이 이런 표현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 이제 막 전역한 20대 중반 B 씨는 인터넷에서 '82년 김지영' 논란을 다룬 기사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82년생 김철수'라는 맞대응 성격의 주장을 담은 글에서 군인을 가리켜 '고기 방패'라고 하는 것을 봤다"면서 "이런 표현이 실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OO녀','OO남'으로 대표하는 혐오표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김치녀','된장녀'라고 조롱한다.
또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에 '한남'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한남 韓男'은 한국 남자의 줄임말로 보통 여성 혐오적인 사고방식을 깔고 있는 남성을 지칭할 때 쓰인다. '김치녀','한남','맘충','고기 방패'등 모두 혐오표현이다.
평소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 한다는 20대 후반 직장인 여성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혐오표현으로 가득찼다"면서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의 경우 혐오표현의 의미나 내용을 모르면 아예 대화에 동참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문제는 이런 표현이 너무 차고 넘치다 보니 무감각해질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10월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1,200명과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 경험과 인식' 조사 결과에서 지난 1년 동안 혐오표현을 접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성인은 64.2%, 청소년은 68.3%에 달했다.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성인 중 과반수가 위축감이나 공포심을 느꼈다고 답했는데, 상당수가 혐오표현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무시하거나, 혐오표현 발생 장소나 사용자를 피하는 등 소극적 방식으로 행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남성 직장인 B 씨는 혐오표현에 대해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순간 기분은 좋을 수 있겠지만, 결국 혐오표현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원색적 욕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직장인 C 씨는 "남성들은 보통 김치녀라고 말하고 여성들은 한남이라고 말한다"면서 "요즘에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란도 많다"면서 "우리 사회 자체가 그냥 혐오표현으로 얼룩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별을 기준으로 혐오표현이 가장 많이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양성평등진흥교육원이 2017년 7월 발표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성차별적 게시물이 26건, 게시글에 달린 성차별적 댓글은 127건으로 조사됐다.
'김치녀', '맘충' 등 혐오와 비난 유형이 101건(66%)로 가장 많았고 폭력·성적 대상화가 52건(34%)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인권위는 혐오표현에 대해 차별과 선동을 정당화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해당 보고서에서 "'혐오표현'이란 성별·장애·나이·인종·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모욕이자 위협을 가하거나, 차별과 폭력을 선동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효과가 있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또 듣는 이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적 성희롱과 언어를 매개로 한 괴롭힘도 혐오표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혐오표현을 듣는 입장에서 피해 상황도 심각하다.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존감 손상으로 인한 자살충동, 우울증, 공황발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가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는 한 누리꾼은 "인신공격은 기본이며, 가족과 지인 등에 대한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이 이어졌다"면서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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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권위는 '혐오표현 리포트'를 바탕으로 언론과 학교, 국가기관 등에 구체적인 정책권고를 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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