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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의 청경우독] '거짓 정보의 시대' 오염된 진실과 편향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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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합리성 위험할 만큼 왜곡,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근간 흔들고 극단적 위험 초래
소속 단체의 방향성에 따라 달라져
의심하는 태도와 비판적 합리성 필요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2016년 9월26일 믿기 힘든 뉴스가 미국 전역에 퍼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트 미 대통령 후보 지지 성명서를 깜짝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미 대선 3개월 전의 일이었다.


기사의 핵심은 이랬다. 교황이 미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의 상대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형사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FBI는 막강한 정치권력에 의해 부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미 연방정부를 부패하게 만든 막강한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것만이 국민을 위한 정부 세우기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사족도 더해졌다. 알고 보니 뉴스 출처는 'WTOE 5'라는 가짜 뉴스 웹사이트의 게시물이었다.

허위ㆍ거짓(fake) 뉴스의 파급력은 컸다. 미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BuzzFeed)에 따르면 미 대선 전 3개월 사이 상위 20위 가짜 뉴스들이 페이스북에서 '공유' 또는 '좋아요'를 받은 횟수가 870만이다. 같은 기간 잘 알려진 전통 매체의 20대 뉴스가 받은 횟수는 730만이다. 날조된 기사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어졌다. '교황의 트럼트 지지 성명' 뉴스를 내보낸 매체에 대한 관심도는 잠깐이지만 전무후무할 정도로 뜨거웠다. 당시 대선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 예상을 빗나갔다.


한국에서도 날조된 정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과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거짓 뉴스의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확산 속도 역시 현저히 빨라지고 있다. 한 술 더 떠 거짓 뉴스에 '레거시 미디어'까지 편승해 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아시아ㆍ태평양통신사기구(OANA) 소속 통신사 대표들과 접견한 자리에서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는 저널리즘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언론의 공정성과 자유를 해친다"고 언급했다. 접견은 언론 본연의 역할과 자정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정보의 생산ㆍ가공 주체들을 향한 일침이 되고 말았다.


가짜 뉴스, 허위 정보는 오랫동안 인류가 추구해온 비판적 합리성과 동떨어진 것이다. 가짜 뉴스, 허위 정보는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 기초하고 강력한 권력과 손잡을 경우 극단으로 치닫는다. 나치 독일의 선전ㆍ선동 책임자 요제프 괴벨스는 가축 도살 장면들로 유대인이 잔인한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그는 금발의 백인 여성을 독일 여성의 전형으로 삼았으며 언론ㆍ라디오ㆍ영화 등 정보의 유통 경로도 장악했다. 괴벨스의 목적과 의도는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이는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반복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언급도 마찬가지다. 괴벨스의 천재성(?)은 수천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당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교수 부부가 쓴 '가짜 뉴스의 시대(The Misinfomation Age)'는 거짓과 허위 정보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이에 따라 대중의 잘못된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여러 연구사례로 보여준다. 저자들의 분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합리성은 위험할 만큼 왜곡돼 있으며, 어떤 것을 믿는가는 대개 누구와 알고 지내는가에 달려 있어 기업ㆍ단체 등 집단의 방향성,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른바 '동조편향' '정보 폭포' '양극화' 현상으로 믿음과 신념이 왜곡된다고 본다. 이는 인간 합리성의 한계다.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건 원치 않는다. 종종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더 신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합리적 판단과 별개로 무리로부터 돌출돼 보이는 건 원치 않는다.


미국의 한 정치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사상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대변인의 과장 발표가 나왔다. 이후 그 정치학자는 미국인 1만4000명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의 취임식 사진을 각각 보여주고 어느 쪽 인파가 더 많은지 고르도록 주문했다. 오바마 쪽 인파가 훨씬 많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인파가 확연히 적은 트럼프 쪽 사진을 두고 다른 쪽보다 많다고 답했다.


거짓 정보로 신념과 믿음을 조작해내는 도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많은 연구소가 왜곡의 도구로, 급증하는 매스미디어가 이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들은 비판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일단 의심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오염된 진실'은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극단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우리는 최근 '조국 정국'에서 많은 '오염된 진실'의 민낯과 대중의 편향을 확인했다. 책이 대신해준 저널리스트로서 고백을 덧붙인다. "저널리스트들이 새롭고, 놀랍고, 서로 상충하는 이야기들, 즉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사람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키며, 널리 읽히고 공유될 법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질 때 (극단적) 편향이 발생한다. 저널리스트들이 흥미진진하다고 여기거나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내용을 공유할 때 설령 실제 사건에 대해서만 보도할지라도 그들은 대중이 한쪽 방향만 보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가짜 뉴스의 시대 /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  박경선 옮김/  반니/ 1만6000원

가짜 뉴스의 시대 /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 박경선 옮김/ 반니/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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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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