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에 가 보았는가? 이른 아침이나 눈 오는 날 오른 쪽 첫 품계석의 가장자리에 서서 사선으로 인정전을 쳐다보라. 이곳에 설 때면 나는 가슴 깊이 한 느낌을 삼킨다. 품격. 바로 그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한 창덕궁, 그 인정전. 처마는 하늘을 향해 있지만 오만하지 않고, 조정(朝廷)을 내려다보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당당하다.
중국을 가 본 사람은 안다.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쯔진청(紫禁城)의 그 거대한 위용을. 역사에 대한 통찰이 없더라도 이 궁궐들이 던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위압. 바로 그것이다. 미안하지만 거기에는 품격이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니 다 되더라는 오만함이 깃들인다.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그렇지 않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로 인한 한한령도 풀지 않은 채, 중국 총리는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서 도와달라는 말을 태연히 한다. 한국의 LCD와 휴대폰을 넘어 반도체까지 초토화시키려 한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힘(돈)으로. 동북공정은 아예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일본을 가 본 사람은 안다. 오사카 궁이나 도쿄의 궁들이 가지는 그 아기자기하고 묘한 느낌을. 칼과 국화가 공존하고, 혼네(속 마음)와 다테마에(겉 마음)가 버무려진 아름다움. 거기에도 품격은 없다. 과거의 역사에 불과하다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해석을 바꾸고 그것도 모자라 역사를 바꾸려는, 나아가 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려 하는, 아 정말 미안하다, 그 교활함.
종묘의 정전(正殿)에 가 보았는가? 늦은 가을이나 눈 내리는 겨울, 외대문을 넘어서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정전을 한 번 바라보라. 둔한 사람이라도 안다.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신 그 정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만히 내려앉아 우리를 응시한다는 것을. 역시 한 느낌을 삼킨다. 그것은 초월이다. 마치 후손들에게 한 마디 하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 하는가? 죽어서 가져갈 게 무엇이 있다고 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걸고 죽을 등 말 등 싸우는가? 착각이라고?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지금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전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보호주의의 기승으로 대표되는 찢어진 무역질서, 심각한 자국우선주의, 불황의 공포. 아시아는 어떤가? 한반도의 지형은 4대 강국 앞의 풍전등화다. 백년 전과 그리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왜 그리 싸우는가? 유성룡의 징비록도 의미가 없고, 식민지 경험과 동족상잔의 경험도 우리에게 각성이 되지 못하는가? 작게는 지난 2개월여. 견강부회, 침소봉대, 곡학아세. 도대체 우리의 정치인과 권력자, 언론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정전과 종묘! 조선은 무엇이 그리 자랑할게 있는가? 한편으론 맞다. 518년을 이어 왔다지만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두 건물이 상징하는 품격과 초월이라는 정신이라도 있었기에 동족상잔의 그 끔찍한 상흔에서 이 정도라도 일어설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한 개인, 한 기업의 공이 아니다. 짓밟혀도 풀처럼 일어서는 우리 역사와 정신의 힘이다. 눈을 들어 앞을 보자. 과거의 100년과 달리 앞으로의 100년은 지금과는 현격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꼭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변화, 그것도 엄청난 변화가 우리를 기다린다. 툴툴 털어버리자. 자주와 공정을 향하지 않고, 품격 있게 행동하지 않고, 정쟁 그 자체에 몰두하는 자에게 역사의 신이 품격이라는 죽비를 내리기를 바란다. 지금은 같이 일어서 초월의 염(念)을 품고 이 작은 한반도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다. 마지막으로 그간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아시아경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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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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