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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게이 삼촌, 조카 잘 돌본 덕에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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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 / 애덤 러더퍼드 지음 / 김성훈 옮김 / 반니 / 1만6000원

[김효진의 책 한 끼]게이 삼촌, 조카 잘 돌본 덕에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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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특이함(?)에 관한 이야기 두 토막. 먼저 동성애 얘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성애는 수수께끼다. 자손을 생산할 수 없는 성적 행동이 어떻게 그리도 높은 빈도로 유지되는가.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잣대를 들이대면 동성애의 유전적 요인은 유전체에서 제거되는 게 타당하다.

'게이 삼촌 가설(gay uncle hypothesis)'이라는 게 있다. 동성애 남성이 가까운 가족 구성원일 경우 그 남성은 자기 조카들의 양육과 보호를 도와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이 동성애 유전자를 버티게 하는 한 요소가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친족끼리는 높은 비율로 유전자를 공유한다. 따라서 '게이 삼촌'이 직접 자식을 낳지 않아도 자기 유전자는 후대에 남길 수 있다.


동성애 남성의 할머니, 고모, 이모가 이성애 남성의 할머니, 고모, 이모보다 자식을 더 많이 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남성의 동성애 성향을 유발하는 유전적 토대가 여성 친척들의 다산 성향을 유발하는 유전적 토대와 같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호주 북쪽 뉴기니섬의 마린드아님족 남성들은 평생 다른 남성과 항문성교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액이 마법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과 연관 깊다. 따라서 이들은 목표하는 사냥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되라고 화살촉과 창끝에 정액을 바르고 정액으로 혼합물을 만들어 섭취한다. 항문성교로 정액을 받아들이는 것이 남성성 강화 수단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사람이나 동물이 행하는 수많은 형태의 성교를 보면 성의 목적은 아기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며 진화에 역행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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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폭력에 관한 얘기. 폭력은 본성에 내재돼 있다. 인간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사냥하기 위해 경쟁하며 서로 충돌한다. 인간은 항상 전쟁을 벌여왔다.


역사 속의 전쟁들은 제각각이면서 동시에 똑같다. 전쟁의 주체와 가용 기술, 지리적 여건 등의 차이로 고유한 특성을 갖지만 충돌 이유는 근본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기원전 465년경~기원전 400년경)는 기원전 431년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인간이 전쟁에 나서는 동기로 두려움과 명예, 이해관계를 꼽았다.


이들 요인은 모두 진화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포식에 대한 두려움은 한마디로 살아남아 번식해 유전자를 유지하려는 것이고 명예, 다시 말해 자기 집단에 대한 보호주의와 자부심은 친척관계인 구성원들의 유전자를 보호하려는 것이고, 이해관계는 영역ㆍ식량ㆍ이성에 대한 접근권 등 유전자의 생존이 가능토록 하는 자원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생물학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된다. '혈연선택(kin selection)'이라는 개념은 이런 해석에 동조한다. 하나의 인구집단은 구성원들끼리 가까운 친척관계라서 공유하는 유전자가 많다. 따라서 진화는 결국 그 집단의 생존 차원에서 공동 목표를 촉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쟁은 혈연관계가 아닌 국가관계에 바탕한다. 국가는 혈연관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신교와 가톨릭, 수니파와 시아파 등의 관계에 유전적 의미를 부여하기란 어렵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전쟁은 인간이 외부적으로 획득한 가치체계나 신념 같은 정치적인 요인을 기반으로 일어났다. 진화이론으로는 우리가 전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전쟁이라고 할 만한 규모의 충돌을 일으키는 동물이 침팬지 말고는 없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과 마호메트를 따르는 이들이 서로 완전히 끝장내지 못해 안달하는 걸 어떻게 진화론으로 설명하겠는가.


인간이 '인간'이 되기까지 드러난 역설과 오묘함

생물학적·사회적 특성으로 진화의 과정 살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인간은 과연 특별한가. 거의 모든 동물에게 적용되는 진화이론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종이 인간이다.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우리를 특별한 창조물의 위치에서 끌어내려 다시 자연계로 돌려보냈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의 저자는 "우리의 특성과 행동 모두 자연선택에 의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어 "하지만 진화는 우리에게 인지능력을 장착시켜 주었고, 역설적이게도 이 인지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자연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 되기까지 드러난 역설과 오묘함을 인간의 생물학적ㆍ사회적 특성으로 들여다본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막강한 지적 능력을 부여해준 진화에 대한 탐험이자 동물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종이라 다른 동물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과 행동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면서 "(동물의 일종과 차별화한 존재라는) 양자상태가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저술가이자 방송인인 저자는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과학저널 '네이처'에서 10년 동안 편집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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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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