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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심화되는 계층담론ㆍ주거격차,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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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심화되는 계층담론ㆍ주거격차,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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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경제적 격차와 세대 간 대물림에 대한 한국판 계층 담론의 버전은 '수저계급론'이다. 이 신조어가 2015년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이렇게나 사회적 반향이 클 줄 몰랐다. 사회에 패배주의와 무기력감을 조장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 수저계급론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 불평등의 고리에 대해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끌었으며 묻혀만 있었던 불편한 진실들도 하나씩 공론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계층 담론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가계자산의 70%를 차지하는 실물자산에 대한 부분이다. 주택 등 부동산 자산의 격차와 대물림이 계층 논의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거실태조사의 원자료(2018년)를 분석해보면, 전체 주택자산 중 소득상위 20%의 주택자산은 40%에 이르는 반면 소득 하위 20%의 주택자산은 9%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소득상위 20%가 전체 주택자산의 50%를, 소득하위 20%는 7%를 차지하는 데 그친다. 따라서 집값이 1%만 올라도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다. 또한 소득 상위 20%와 소득 하위 20%의 주택자산 격차는 전국적으로는 4.3배이지만 서울과 부산은 7배에 이른다. 소득계층 간 집값 격차가 큰 서울과 부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주거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

전세보증금의 소득계층 간 격차는 매우 편차가 크다. 이는 집값에 비해 전세의 지역 간 양극화 양상이 뚜렷해 어떤 지역은 전세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한편, 또 어떤 지역은 역전세난을 우려하는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득 상위 20%와 소득 하위 20% 간의 전세보증금 격차가 10배를 넘어 전세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전세가 평준화 지역도 있다. 절대적 주거빈곤을 의미하는 최저주거기준의 경우, 전국적으로 미달가구 비율은 5.5%이지만, 소득하위 20% 중 미달 가구 비율은 10%이며 소득상위 20%의 미달가구 비율은 1%이다.


주택 자산의 대물림 현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택거래 통계를 보면, 2013년 5만4000건의 증여 거래는 연평균 1만1000건씩 증가해 2018년에는 11만2000건에 이른다. 증여는 가족주의적인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이러한 대물림이 아예 출발선부터 달리한다는 점에서 수저계급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학벌은 계급, 체면은 자본'의 저자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에는 경제 자본으로 일굴 수 있는 세 가지 형태의 자본으로 문화 자본, 학력 자본, 사회관계 자본을 꼽았다. 경제 자본만으로는 세 가지 자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는 않지만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역으로, 경제 자본의 결핍은 문화, 학력, 인간관계망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21세기형 사회계층의 자화상을 어떻게 다시 그려나가야 할 것인가. 우선 하나의 정책으로 모든 지역이나 계층을 일괄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총론보다는 각론적 기술과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또한 계층 고착화 문제에서 주거가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정부 차원의 처방과 해법이 필요하다. 한 가지 대안적 방안은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새로운 기회도 생긴다. 공간을 잘 조성하면 더 좋은 교육 서비스, 더 괜찮은 또래 집단,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간을 아우르는 주거 정책은 교육, 일자리, 문화, 사회관계망까지 포괄할 수 있다. 여가와 문화시설, 공원과 녹지 공간과 같은 삶의 웰빙 요소와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은 주택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복합화와 집적화가 가능하다. 사람 간의 교류와 소통, 이해와 신뢰 형성, 공동체 의식도 높인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을 하나의 소비재가 아닌 사회 통합재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것이야 말로 사회정책으로서 앞으로 주거정책이 보강해나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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