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독서] "적됐다 동지됐다" 물고 물리는 동북아 '패권' 전쟁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대(對)일본 과거사 분쟁에서 촉발된 무역분쟁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 10위권 내에 드는 거대 경제권, 그것도 20세기 초반 이후 하나의 축처럼 움직여왔던 서울과 도쿄가 처음으로 서로 무역분쟁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북핵이란 변수를 가운데 두고 남북한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라는 4개 열강간의 알력다툼으로 냉전기부터 켜켜이 쌓여온 외교분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외교체제가 운영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2차대전 전후 패권다툼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 리처드 맥그레거는 남북한을 사실상 종속변수로 두고 19세기 말 이후 현재까지 동북아 패권을 움직여온 미국, 중국, 일본의 외교변화와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 발생가능한 미래 등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종속변수로 빠진 것은 불쾌하지만 한국에 대한 저자의 정보가 부족하고 접근할 기회는 별로 없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외부에서, 특히 서양에서 동북아 패권 역사를 다룰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사건의 시발점이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이다. 해외에서는 흔히들 이를 1차 중일전쟁이라고 부른다. 1937년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한 계기가 된 중일전쟁은 2차 중일전쟁으로 부른다. 세계사적으로 청일전쟁이 동북아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동안 한 번도 동북아의 주요 패권으로 등장해본 적이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당시 동북아 운명을 가름할 강대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패권분쟁의 시발점으로 청일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이전의 동아시아 패권 역사란 중화(中華)사상에 입각해 조공-책봉 체제가 운영된 중국 대륙과 한반도, 지리적 상황으로 이와 단절ㆍ소외된 일본이 전부를 차지했다. 일본은 외교ㆍ문화ㆍ경제 모든 부분에서 한반도나 중국에 철저히 종속돼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1842년 아편전쟁 이후 몰려온 서구세력은 기존의 동아시아 외교체제를 박살냈다. 전통 강자인 중국과 신흥 강자인 일본 모두에 근대화에서 누가 더 성공해 열강 대열로 합류할지 증명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성공한 일본은 1945년 패망 직전까지 동아시아의 가장 큰 패권세력으로 성장했다.
동북아 패권 문제는 일제 패망 이후 본격화한다. 동북아 국가들은 근대화가 성숙되기 이전 일본이 홀로 열강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해 침략전쟁을 일삼는 바람에 외교적으로 아무 것도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육지의 영토 분계도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해양 영토 분계는 한 번도 설정해본 적이 없었다. 외교의 부재는 향후 패권다툼에서 주요 분쟁 소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었다.
더욱이 2차대전 종전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냉전기가 찾아오면서 각국의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종래 청나라를 계승한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쫓겨나고 1949년 신생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정부가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정권이 됐다. 한반도 북쪽에는 북한이라는 정권이 새로 태어났다. 변수들이 더 복잡해졌지만 냉전체제로 상호 협상과 대화의 통로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가 바깥에서 벌인 만행, 다시 말해 과거사 문제는 각국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요리되기 시작했다. 소련과 분쟁이 빚어지면서 미국과 데탕트를 시작한 1970년대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그대로 덮자고 제안했다. 배상문제도 모두 그대로 넘어갔다. 현재 대만인 중화민국 정부는 이보다 앞서 과거사 문제를 덮고 외교 정상화에 나섰다. 형식상으로나마 배상을 받아온 국가는 한국 뿐이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미국과 패권다툼에 나선 중국이 입장을 바꿨다.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반일감정을 끌어올리며 일본과 대치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우익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각종 망언 등 분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한몫하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과거사를 현실정치에 이용하며 현실외교의 무기로 삼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의 해양 영토분쟁에 역사가 끼어들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게다가 일본이 역내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계속 대치하는 배후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정책이 버티고 있다.
저자의 눈에 미ㆍ일과 중국간 동북아 패권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동북아 어떤 나라에도 연고가 없는, 제3자인 저자의 눈에 동북아의 현 패권다툼은 청일전쟁 전후로 전개된 영국ㆍ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일전쟁은 명목상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세력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배후에는 당시 초강대국 영국의 의중이 개입돼 있었다. 양국의 전쟁 재원 모두 영국의 차관으로 확보됐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2년 영국의 동맹국이 될 수 있었다. 일본은 러시아와 일전을 벌여 영국이 인정한 부분에 한해 동북아의 패권자가 됐다.
현재 일본의 경우 믿는 배후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가를 맹렬히 비판한다. 저자는 첨예한 대립의 틈바구니에서도 자유무역 체제 유지와 한ㆍ미ㆍ일 삼각 동맹 체제 유지로 지켜온 동북아 외교체제의 틀을 트럼프가 완벽히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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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나마 최소한의 원칙을 유지해온 외교마저 무너지면 동북아는 각종 분쟁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는 지뢰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광활한 지뢰밭 한가운데 우리나라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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