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년가게]꽃돗자리 결 따라 40년 버틴 고려화문석…"한 점 한 점이 작품"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0년 이상 도ㆍ소매, 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 중 전문성, 제품ㆍ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하기로 했다. 대(代)를 이어가며 100년 전통을 자랑할 한국의 백년가게를 소개한다.
[한국의 백년가게]<25> 인천 강화 고려화문석
"화문석(花紋席)은 한 점 한 점이 모두 작품이에요. 이리로 와서 잘 좀 살펴보세요."
지난 2일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에서 만난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59)가 기자를 잡아끌었다. 얼마전 주문한 새 화문석 한 점을 받아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로 막 들어온 참이다.
이 대표가 화문석을 진열대에 쫙 펼치자 매끈하게 다듬어진 왕골 한 가닥 한 가닥이 그야말로 생생하게 빛났다. 왕골을 일일이 말리고 손질해서 오로지 수작업으로 곱게 엮어 완성하는 꽃돗자리.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깔고 앉고 어떻게 이 위에 드러누울까 싶었다.
고려화문석은 1980년에 강화 중앙시장에서 문을 열었다. 화문석 가게 수 십 곳이 강화 곳곳에서 성업하던 시절이다.
"5일장이 열리던 때는 장날마다 새 화문석이 3000점도 넘게 쏟아져나왔어요. 한 달에 2만 점 가까운 화문석이 시장에 풀린 셈이죠. 소매상들이 좋은 상품 차지하려고 경쟁을 심하게 하다보니 경매까지 열렸어요. 오래된 이야기네요."
고려화문석이 버텨온 40년 동안 강화 화문석의 공급량은 '정말인가' 할 만큼 크게 줄었다. 지금은 가게별로 한 달에 몇 점, 많아야 십 수 점밖에 공급을 못 받는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장인(匠人)들이 대부분 60~70대로 연로해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고 후진 양성이 쉽지 않은데다 찾는이도 줄어 시장이 오그라들었다.
풍물시장에 터잡은 화문석 가게는 고려화문석을 포함해 5곳 뿐이다. "수요가 줄어든 만큼 공급도 줄어서 가격이 유지된다"는 이 대표의 설명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십 년 이십 년 전에 저희 가게에서 화문석을 구입한 손님이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을까' 싶어서 번호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어보시는 거죠. 그런 분들은 반가운 마음에 며칠 안 지나서 가게로 찾아와 화문석을 사 가시는데, 그럴 때면 '그래도 이렇게 버티길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느끼고 그럽니다."
구성진 말투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이 대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저 깊숙한 곳에서 비닐로 한 번, 천으로 또 한 번 포장한 화문석 한 점을 꺼내와 펼쳤다. 용이 날아오르려 하는 형상을 수놓아 만든 것으로, 1996년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역작이다.
작품명은 '도약 96'. 어느 한 귀퉁이도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았다. 표구만 하면 어디에 걸어둬도 손색없는 예술품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할 것 같았다.
제작자는 이 대표의 남편이자 고려화문석 창업자인 정택용씨다. 젊어서부터 강화 화문석계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그는 11년 전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정택용씨의 유작(遺作)이다. 크기가 다른 1점을 포함해 모두 2점이 남아있다.
이 대표는 "유작이니까 제가 오래오래 간직하는 것도 좋겠지만, 화문석의 예술적인 가치를 알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작품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분이 계시면 판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펼쳤던 작품을 도로 마는 동안 흠집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 불안했다. 가게를 지나던 이들 서넛이 발길을 멈추고 작품을 한참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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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은 화문석의 명맥을 잇고자 '화문석 후진양성 프로그램' 등이 담긴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생산 규모는 줄었어도 강화 화문석은 건재한다는 걸 많은 소비자가 인식해주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화문석 이경옥 대표가 1996년 8월30일자 강화신문 지면(왼쪽)을 펼쳐 소개하고 있다. 남편인 고(故) 정택용씨의 작품 '도약 96'이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담겨있다. 그 해 발간된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안내책자(오른쪽)에도 작품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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