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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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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박수는 길게 이어졌다. 앙코르. 백건우씨는 네 번 무대에 다시 나와 다섯 번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허리를 굽힐 때마다 그의 팔은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졌다. 대개 허리를 굽혀 인사할 때 팔이 몸에 붙지 않나? 원래 백건우씨는 저런 자세로 인사를 하나? 지난 12일 백건우 리사이틀이 열린 마포아트센터. 70여 분에 걸친 피아노 연주를 끝낸 그의 팔이 몸과 떨어져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니다. 음악 상식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날 백건우씨가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음악 열두 곡 중에 '아! 이 음악'이라고 생각할 만한 곡이 하나도 없었다. 7년 전쯤 우연히 음악회 티켓을 얻었다. 어느 기업이 매년 여는 음악회였다. 그렇게 예술의전당에서 난생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여성 피아니스트는 몸을 격정적으로 움직이며 피아노를 쳤다.

그에 비하면 백건우씨의 피아노 연주는 겸손했다. 줄곧 고개를 숙인 채 연주했다. 1부 공연을 중간쯤에 잠깐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한 곡을 연주한 다음 다시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봤다. 백건우씨가 허공을 쳐다본 뒤 연주를 시작하고 끝낸 다음 다시 허공을 바라본 그 곡은 기자간담회에서 "쇼팽의 곡 중에 가장 훌륭하지만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곡"이라는 설명을 들은 폴로네이즈 판타지였다고 기억한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고개를 든 것은 그 때 뿐이었다. 2부 공연에서는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초반에 왈츠 세 곡을 연주한 뒤 오른손을 허공으로 높이 쳐든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날 연주회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라 공연장 문을 열며 확인한 시간은 오후 8시3분. 공연은 다행히 5분 늦게 시작됐다. 나는 공연장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선 청중이었다. 내 자리는 오른쪽 맨 끝이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오른쪽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왼쪽에 앉은 청중과 최대한 거리를 뒀다. 허리를 약간 비튼 그 불편한 자세로 나는 40여 분에 이르는 1부 연주를 들었다. 세계적인 대가의 겸손한 연주와 축 늘어진 팔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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