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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대쪽' 이회창, 화려한 정치입문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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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 국무총리 시절 '소신' 행보 국민 응원 받아…1996년 15대 총선 앞두고 정계 입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신성일(81)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신성일(81)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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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생활의 기초이다. 개혁은 보수의 한 방편이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그날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의 입당은 한국정치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건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의 영입 노력이 있었다. 그가 당사에 도착하자 사무총장과 당직자 등 50여명이 도열해서 그를 맞이했다.

사무처 직원들은 꽃다발을 증정하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당시 당 대표는 그를 위해 고위 당직자 전원이 참석하는 오찬을 마련했다. 1996년 1월24일 신한국당 입당을 선언한 그의 이름은 이회창.


이회창은 화려한 정치입문의 교과서다. 입당 기자회견 이틀 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렀다. 김영삼 정부가 정치적인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그의 입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정치인 이회창은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였다. 이회창은 신한국당 입당 이전부터 국민적인 지지가 높았던 인물이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시절 불법선거에 대한 엄정한 선거관리로 정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그는 감사원장으로 기용됐다. 이른바 ‘대쪽’ 이미지가 형성된 계기였다. 감사원장 시절 성역과도 같았던 청와대와 국방부 등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방산 비리에 메스를 들이댔고 국민적인 성원을 받았다.


이회창은 1993년 12월 국무총리로 기용됐는데 ‘소신 총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김영삼 대통령 최측근에게도 굽힘이 없이 소신껏 총리의 권한을 행사했다.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며 법치를 구현하려고 하자 당시 살아있는 권력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회창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회창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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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회창은 취임 120여일 만인 1994년 4월 국무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대쪽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국무총리 이회창의 사퇴는 김영삼 정부에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김 대통령의 인사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이 총리가 물러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회창을 김영삼 대통령과 신한국당의 노력으로 다시 영입했으니 정치권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회창은 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1996년 15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당시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던 시절이다. 15대 총선은 신한국당 김영삼 총재가 아니라 이회창 선거대책위원장 체제로 치르겠다는 포석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신한국당은 139석을 차지하며 국민회의 79석, 자민련 50석보다 크게 앞선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지켰다. 과반 의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선전하면서 정치적인 과실을 얻었다.


당시 신한국당은 서울 47개 의석 중 27석을 얻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서울은 14대 총선 당시 민주자유당이 44개 의석 중 16석을 얻는 데 그칠 정도로 쉽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러한 선전은 이회창 영입 효과와 무관하지 않았다.


정치권 밖에서 큰 꿈을 꾸는 이들은 이회창 모델을 상상하곤 한다. 자신의 정치 입문 자체가 정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정치인 생활 초기부터 대단한 결과물을 내놓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 이회창은 준비 과정 자체가 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을 거치면서 직책이 가진 무게감이 아닌 자신의 소신과 능력으로 국민적인 성원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회창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한 보수정당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이후 이회창의 정치 인생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여전히 그를 아까운 인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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