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1등급 훈장…형평성 지적에 "국민이 요청"(종합)
유관순, 1962년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 받아
그동안 공적에 비해 '훈격 낮다'는 지적 많아
공적심사위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장' 서훈 결정
일각에선 형평성 지적도…보훈처장 "충분한 평가했다"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정부가 3ㆍ1절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에게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부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현장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의결했다고 국가보훈처가 이날 밝혔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나 훈격이 낮아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에 정부는 유관순 열사의 서훈 상향을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해 국가보훈처에 별도 공적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공적심사위는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유관순 열사에게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기로 심의ㆍ의결했다.
위원회는 "유관순 열사가 광복 이후 3ㆍ1운동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전 국민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국민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훈장은 제100주년 3ㆍ1절 중앙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관순 열사 유족에게 직접 수여할 예정이다.
정부는 "유관순 열사 추가 서훈과 함께 올해 100주년을 맞는 3ㆍ1운동에 대한 다양한 행사와 기념사업을 통해 100년 전 3ㆍ1운동에서 나타난 조국독립과 자유를 향한 정신을 계승하고 국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민적 열망이 있었고 이는 국민 청원이나 특별법 재정 노력으로 이어졌다"며 "해외에서도 유 열사의 자유, 평등, 인권 정신을 인정하고 기리는 다양한 활동이 진행됐다"고 추가 서훈의 이유를 설명했다.
피 처장은 유관순 열사에게만 추가 서훈을 하는 것이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한 평가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피 처장은 "유관순 열사 이외 다른 독립유공자들도 국민적 요구가 있을 경우 서훈을 조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공적심사위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16일 충남 목천(현재 천안)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8년 4월 서울 중구 이화학당의 고등과 1학년에 진학했고, 3.1운동이 발발하기 전날 고등과 1학년 학생들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했다.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나온 만세 시위대가 학교 앞을 지나자 유관순 열사는 5명의 시위 결사대 동지들과 함께 시위운동에 동참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유관순 열사는 3월13일 사촌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귀향해 본격적으로 고향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추진했다.
같은해 4월1일 병천면 아우내 장날, 유관순 열사는 장터 어귀에서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러 모여드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시위 대열이 아우내 장터 곳곳을 누비자 병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달려와 총검을 휘두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이 "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했고, 이를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 들다가 유관순 열사의 모친마저도 일본 헌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의 시신을 둘러메고 병천 헌병주재소로 쇄도해 항의 시위를 하다가 체포돼 천안헌병대로 압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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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중상을 입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해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28일 오전 8시,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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