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낀 아파트 한 채로 버티는데"…'깡통전세'에 노년층 휘청
전월세 수입으로 버티는 노후
전세값 내리자 보증금 돌려줄 돈 없어 아파트 급매
60대 이상 '임대보증부채' 규모, 다른 연령층 비해 압도적으로 커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올해 70세가 된 김명인(가명)씨는 최근 강남의 한 아파트를 시세보다 3억 넘게 싼 급매로 내놓았다. 10년 전 직장을 그만둘 때 쥔 퇴직금에 대출금을 보태 노후 대비용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그 동안 전세를 놓고 오른 전세금으로 이자만 갚아나갔다. 그래도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도 꾸준히 올라 노후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김 씨가 이 집을 급매로 내놓은 건얼마전부터 전세값이 급락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금은 소득이 없어 대출을 받기도 힘들고, 나도 강북에서 전세로 살아 돈을 구할 방법이 없다"며 "새 세입자를 구해보려고 기존 세입자에게 시간을 달라고 버텼지만 결국 급매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세값 내리자 불안해진 노후 대비
최근 전세 가격이 급락하며 60대 이상 고령층의 자산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를 해 자력으로 노후 대비를 했던 노인들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8일 하나금융경제연구소(김수정 자산분석팀 수석연구원)가 '2018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계는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전세 보증금인 '임대보증부채' 규모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김 씨처럼 노후 대비를 위해 대출을 끼고 집을 사 전ㆍ월세를 놓은 뒤 생활비를 마련하는 투자 방식이 배경이 됐다. 전세 가격이 추락해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전세'까지 등장하자 노년층의 부채 위험도 커졌다.
임대보증금 규모가 가장 큰 세대는 60대 이상으로 가구당 4673만원에 달했다. 전세대 평균(3093만원)보다 51% 많은 규모이자, 부채보유 가구 60대 이상의 가구당 빚(1억1192억)의 42%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6년 사이(2012년 대비 2018년) 세대별 임대보증금 증가폭을 봐도 60대 이상이 843만원으로 가장 컸다. 전체 평균(562만원) 보다 50% 이상 높았다.
김수정 수석연구원은 "국내 가계는 고령층일수록 실물자산 보유 비중이 높아 부동산 가격에 민감하다"며 "베이비붐 이상 세대들은 임대보증금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 성향이 크게 나타나 전세가격이 하락하면 상환 부담도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지방에서도 비슷한 사례…고령층 유동성 리스크에 취약
지방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터지고 있다. 5년 전 대출을 끼고 세종시에 아파트를 구입한 노기민(가명ㆍ67세)씨도 전세 가격이 떨어져 대출 이자도 제때 갚기 힘들어졌다. 노 씨는 "세종시 집값이 오를 거라 투자 권유를 받고 49평형(164㎡) 아파트를 샀다"며 "살 때보다 매매 가격은 올랐지만, 전세 가격이 5000만원 정도 내려 지금은 은행 이자도 못 낼 형편"이라고 했다.
전ㆍ월세 수입으로 노후를 지탱하는 생활방식은 한국에서만 볼수 있는 현상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은퇴 후 소득이 줄면서 빚도 줄어든다. 그러나 한국 고령층은 나이가 들수록 빚이 더 늘어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세대별 가계 부채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65~74세 연령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유럽 33.9%, 미국 96.4%인 반면 한국은 105.5%에 달했다. 한은 관계자는 "고령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실물자산이 많지만 유동성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은 이에 유의해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내 인생 답답해서 또 켜봤다"…2만원짜리 서비스...
한편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은 '다중채무자' 중에서도 50대 이상이 가장 빚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난해 2분기 기준 '연령대별 다중 채무자현황' 자료에 따르면 50세 이상 1인당 평균 채무금액이 1억4020만원에 달해 가장 높았다. 40~49세는 1억2370만원, 39세이하 는 9050만원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 다중채무자 중 신용 7~10등급 차주수는 22.6%로 집계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