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사전] 관태기 - 나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고, 왕 역시 그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왕의 이동 경로·건강상태는 실시간으로 따라붙는 사관에 의해 추적당했고, 왕은 궁궐의 주인임에도 두 다리 뻗고 편히 쉴 시간과 공간이 박탈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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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시간은 물론,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순간에도 왕은 지켜보는 이들 앞에 바지를 내려야 했다. 내시가 들고 온 일종의 요강 ‘매우틀(왕의 용변을 매우라 불렀다)’에 용변을 보면, 그 내용물은 곧장 궁중 어의의 혀끝에 옮겨져 왕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있는지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하물며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라고 자유로웠으랴. 숨이 붙어있는 한 왕에게 사생활이란 가질 수 없는 시간이었다.
관태기는 사람과 관계 맺기에 권태를 느끼는 현상을 이르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피로를 담아내고 있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숨 막히는 관계와 간섭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움집 ‘회심와(會心窩)’를 짓고 종종 이곳에 들러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고 전한다. 사회적 동물이기 이전에 모든 사람은 혼자이므로, 관태기에 맞서 스스로를 지킬 고독력이 간절한 시절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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