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집에 가서 비빈다.
 봄이면 흔하게 피던 길섶 풀꽃을
 어머니 땀 뚝뚝 흘리며 뽑아내던 밭고랑을
 스르륵 뱀이 스며들던 풀숲을
 고추장 넣고 쓱쓱 비빈다.

 어린 날 나의 철없던 꿈은
 배가 불룩 나온 사람이었다.
 흰 쌀밥 지을 수 있는 무쇠솥이
 여러 개 걸린 부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억도 배고픈 기억과
 배부른 기억으로 나뉘지만
 지금도 군침이 도는 식성은
 여전히 배고픈 음식들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은 밥, 한 숟가락 떠 넣으면
 참 이상한 것이

[오후 한 詩]떡순이네 보리밥집/박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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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가지의 맛이 난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의 하굣길 같은 맛
 달그락달그락 빈 도시락통 같은 맛
 비빈 보리밥에서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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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오월 열나흘
 내 생일날
 미역국 대신 기름진 밥상 대신
 혼자서 조용히 보리밥집으로 간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엄마가 만들어 준 간장비빔밥은. 고들고들 식은 밥에다 간장 두어 숟가락 끼얹고 날계란 하나 톡 까서 비볐을 뿐인데 어쩜 그렇게도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달큰한지. 복실이도 대청 끝자락에 매달려 낑낑거리고 아지랑이도 못내 아쉬워 자꾸 기웃거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이랑 나랑은 엄마가 들고 있는 숟가락을 따라 비행기가 슈웅 슈퍼맨이 슈웅 냠냠대느라 얼굴이 빨개지고. 더할 것 없이 충만하던 어느 봄날 공일 점심은 이제는 다만 허기진 기억으로 남아 무시로 나를 끌어다 밥상머리에다 앉히고, 나는 그때마다 잠시 쓸쓸해질 뿐이고.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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