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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는 풍경] 엄마의 송곳패스, EPL보다 재밌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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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지자체 최초 결성, 송파구여성축구단 "처음엔 여자축구 손가락질…최근엔 등번호 보고 응원"

▲송파구여성축구단이 8일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송파구여성축구단이 8일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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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8일 영하의 기온을 살짝 웃도는 날씨에도 서울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선 힘찬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균 연령 41세인 송파구여성축구단은 매주 월·수·금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이곳에서 정규 연습을 한다. 2002년 월드컵에 앞서 여성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1998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만들어졌던 이 축구단은 전국 대회 우승 38회, 준우승 18회를 차지하며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선수들 대부분은 축구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다.

축구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여자가 축구하러 다닌다고 하면 남자들이 손가락질을 했다고 한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은 오히려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등번호를 부르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시민들도 있다.
1기생 맏언니 김정희(여·58)씨는 "우리 아들이 축구장에 와서 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유럽 축구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면서 "엄마들이 축구한다고 하면 그냥 공 던져 놓고 그걸 쫓아다니는 걸로만 생각하는데 패스를 잘 하니깐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주은정(여·48)씨는 임신이 된 사실을 모르고 5개월 동안 축구 훈련을 받았던 적도 있다. 당시 구청 주무관이 이를 인지하고 주씨에게 알려주자 주씨가 가장 먼저 한 대답은 "임신하면 축구 못 해요?"였단다. 그만큼 열정이 대단했다. 임신 8개월까지 시합은 나가지 않았지만 운동은 꼭 함께 했다. 10여년간 아이가 없다가 축구를 하러 왔다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송파구여성축구단 훈련 모습

▲송파구여성축구단 훈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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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이들이 쌓아온 자부심이다. 예전엔 발 근육 만드는 밴드를 사서 집에서 운동하기도 하고 헬스장에도 나가 근육을 만들기도 했다. 박영희(여·57)씨는 "근육으로 딴딴하니깐 아이들이 엄마 다리는 여자 다리 아닌 것 같다고 놀리기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대가 끊어지고 앞니가 부러져도 낫고 나면 어김없이 축구장으로 나왔다. 박경혜(여·55)씨는 "심하게 다쳤을 때 축구를 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다 나으면 그 생각이 어디로 갔는지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더라"면서 "체력이 안 되면 스스로 빠지겠지만 아직까진 괜찮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5년 경주에서 있었던 대회다. 2대 0으로 지고 있던 경기 후반 동점골을 달성한 후 승부차기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기고 나서는 다들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고.

송파구청은 축구단 지원을 위해 기존 잔디 축구구장을 송파구여성축구장으로 명명하고 샤워 시설과 라커룸까지 완비했다.

축구단의 올해 목표는 오는 4월 열리는 제17회 여성가족부장관기 전국여성축구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는 것이다. 맏언니 김씨는 "실제론 엄마뻘 되지만 언니, 동생으로 서로 소통하다보면 20대들도 책임감을 갖고 운동에 임한다"면서 "우리의 역사를 이어 명문 구단으로 키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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