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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성산포에 서면/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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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대할망 제주를 지을 적
 바닷속 깊이 잠든 성산 일으켜 세웠다
 대할망 보시기에 몹시 좋았더라

 1949년 1월
 성산포 앞마당 터진목
 바다에 명줄 대던 수백의 생이들
 호드득거릴 새도 없이 사냥은 끝났다
 숨죽인 일출봉
 해는 성산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빛나지 않는 바다
 성산포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이곳에 서면
 대할망 속옷 나부끼는 빨랫줄에 앉아
 재잘대는 생이들의 목소리
 성산의 바람 타고 들려온다

 할망 우릴 얼마나 소랑햄쑤과?
 저기 한락산만큼, 또 바당만큼 소랑햄쪄!

 
[오후 한詩]성산포에 서면/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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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포에 서면'은 '제주 4.3 민중항쟁' 기간 중 1949년 1월 토벌대가 자행한 북촌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해 쓴 시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나 진상에 대해 밝힐 지면은 못 되지만 꼭 말하고 싶은 사실 하나는, 단언컨대 이 사건의 본질은 국가권력이 양민들을 함부로 무참히 죽였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후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그렇기에 국가권력이란 실은 폭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진실을 깨우쳐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폭력은 그리고 그 폭력의 희생자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하건대 기어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희생자들을 지금-이곳으로 다시 불러내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것은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그것을 '애도'라고 부른다. 애도는 완결될 수도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되는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시인은 "성산포 앞마당 터진목"에서 참혹하게 죽어 간 수백의 생목숨들을 "생이"('새'의 제주 말)들로 재생하고 있다. 이 얼마나 살뜰하고 갸륵한 마음인가! 그리고 "설문대할망"과 "생이들"이 나누는 저 마지막 대화는 또 얼마나 절절하고 애달픈가! '할머니 우릴 얼마나 사랑하세요? 저기 한라산만큼, 또 바다만큼 사랑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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