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날려버린 담뱃세 7938억원…정부 무능이 원인이었을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정부 2014년 인상전 매월 담배사 재고 현황 등 보고 받아
담배 제조사 매점매석으로, 정부 2014년 세수 늘고·2015년 금연효과 커보여
담뱃세 인상분 환수규정 입법미비…책임규명 필요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담뱃세 인상과정에서 정부가 제대로 세금을 거두지 못해서 약 8000억원 가량의 세금을 거두지 못한 것을 두고서 논란이 벌어졌다. 2015년 1월1일 담뱃세가 인상되면서 담배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는데, 당시 담배 제조회사들과 유통업체들이 재고로 보유한 담배에 대해 인상차액이 그대로 넘어가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거둘 수 있는 세금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은 12일 아시아경제 보도처럼 2015년 4월15일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정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을 때부터 지적됐다.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전직 국회의원이 된 김 전 의원은 당시 "국고로 들어가야지 제조사나 유통업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담뱃세가 2000원 인상된 1월1일, 편의점 담배 판매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담뱃값 인상전 미리 담배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 물량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사진=아시아경제 DB]

담뱃세가 2000원 인상된 1월1일, 편의점 담배 판매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담뱃값 인상전 미리 담배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 물량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사진=아시아경제 DB]

AD
원본보기 아이콘

당시 김 전 의원은 실정법 위반이 안 된다면 재고차익을 모두 환수하도록 하고, 설령 실정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사회환원이라도 시켜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주 전 차관 등은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의 지적이 '무시'당한 뒤 이 문제는 1년가량 뒤, 즉 담배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의 '대박'난 지 1년 3개월 만에 감사원에 의해 다시 재조명 받았다.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담배 제조사와 담배유통사는 2014년 12월31일 4억9865만갑의 담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담배들은 하루가 지난 뒤 제조사와 유통사에 막대한 재고차익을 안겨줬다. 담배는 공장에서 출하할 때 세금이 납부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5억갑에 가까운 담배는 2014년의 담뱃세를 적용받은 채 보관됐다. 2015년 담배가격이 인상되자 담뱃세 세금만큼이 고스란히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에 넘어갔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7938억원의 부당이익이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감사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세금은 환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관련 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감사원은 담뱃세 인상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얻기 위해 허위로 반출(*제조장에서 외부로 내보내는 행위, 담배는 이때 세금 부과) 등을 저지른 외국계 담배회사 두 곳에 대해 2083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사실을 지적하며 국세청에 2921억원(조세범칙행위에 따른 가산세 적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왜 정부는 8000억에 가까운 세금이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로 흘러가는 것을 수수방관했냐 하는 점이다. 최소한의 상식을 갖췄다면 정부는 하루 사이에 가격이 올라가 발생하는 재고차익 환수할 수 있는 규정 등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련 대책은 정부가 만든 담뱃세 인상안에 없었다.

정부는 2014년 6월12일에 담뱃세 인상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11일에 경제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정부 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발표 다음 날인 9월12일에 1~8월까지의 담배 판매의 평균 104% 이상을 반출, 반입할 수 없는 매점매석고시를 발표한다. 이후 같은 해 연말 매점매석행위 점검단을 통한 단속과 KT&G와 재고량 감축에 나선 것이 사실상 정부 대책의 전부였다. 하지만 외국계 담배 제조사들은 정부가 매점매석 고시가 발표되기 이전에 담뱃세 인상을 예상하고 생산하지도 않는 담배를 생산했다고 보고(2014년 세금으로 담뱃세를 납부하는 방법)하는 방법 등을 통해 담배를 빼돌렸다. KT&G의 경우에도 정부 단속 등을 통해 담배 재고를 줄이기는 했지만, 평년 수준의 재고분에 한해서는 담뱃세 인상 차액을 가져가는 것이 사실상 허용됐다.

감사원은 앞서 이와 관련해 입법 미비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감사결과 공개문을 통해 "기재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계기관은 담뱃세 인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마련하면서 재고차익 환수 대책을 검토하여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재고차익이 국고 등 세입에 이를 수 없게 됐다"면서 "(그 결과)담배 소비자는 동 차익 상당액을 더 부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소비자 부담으로 발생한 위 재고차익을 세입으로 확보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외국 등의 경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을 때 사전에 방비 대책을 세웠다. 일본의 경우 담뱃세 인상 시마다 관련 법률 부칙에 담뱃세 인상 직전에 일정 수량 이상의 담배를 보유한 자에게 담뱃세 인상차액을 신고하고 내도록 하는 규정을 뒀고, 미국도 2009년 4월1일 담배 소비세 인상하면서 담뱃세 인상차액을 4개월 이내에 신고 내도록 해 재고차익 부당 귀속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경우에는 이런 규정들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담뱃세 인상만 한 것이다. 법만 마련했어도 수천억원대의 세금을 거둘 수 방안을 찾아볼 수 있지만, 법이 없는 상황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이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지적했다. 기재부가 매달 담배 재고량을 보고 받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담뱃세 인상을 전후로 기재부는 제조사로부터 '매월' 생산량-반출량-재고량 등을 제출받았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막대한 재고차익과 탈세 의혹이 유발된 것은 담뱃세 인상 전 시기의 재고량을 파악하고 있었던 기재부가 '담배사업법'에 규정된 담배제조업자에 대한 업무보고 지시 및 관계 장부나 서류 등의 열람 권한 등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대로라면 기재부는 막대한 탈세 가능성을 알 수 있었음에도 손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기재부가 담뱃세 인상 정책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세 부담 증가와 재고량 관리 방기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보완대책을 마련하여 국민 앞에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입법 미비와 관련해 정부책임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기재부 외에도 여러 부처가 관여된 사안"이라면서도 "입법 부작위에 대해서는 책임에 관한 판단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 재고차익 환수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 측은 "이 부분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이 사안을 두고서 많은 사람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담배 포장지에 연도를 표기하거나, 가격을 표시하는 방법, 포장지 색깔을 일부 바꾸는 방법만으로도 탈세를 막을 수 있었는데 정부는 정말 몰랐냐는 것이다. 더욱이 세금 환수 규정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구심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검토해볼 수 있다. 정부가 정말 무능했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냐 하는 점이다. 감사원 등은 정부가 일단 무능했다는 쪽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세금 탈루를 방조했을 가능성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정부는 담뱃세 탈세를 방조했을 경우 2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세금이다. 담뱃세 인상을 결정한 2014년은 심각한 재정상의 어려움을 겪던 해였다. 2015년 정부가 제출한 결산을 보면 2014년 관리재정수지는 29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2009년(31조2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였다. 국가채무는 530조5000억원을 기록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31%(2010년)에서 지난해 35.7%로 상승했다.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점에 담배 제조사들이 많은 재고를 보유하는 것은 재정의 측면에서 세수 증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담배는 생산되어 공장에 나가면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의 재고가 늘수록 세입은 늘어난다. 담배 제조사 등이 담배를 매점매석한 덕에 정부의 재정적자는 소폭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유인이 있다. 담뱃세 인상으로 금연을 이룬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의 이유와 관련해 '국민의 건강'을 들었다. 이 목표는 결국 담뱃세 인상 이후 담배 판매가 전년보다 얼마나 줄어들었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담뱃세를 인상했는데도 담배 판매가 큰 폭으로 줄지 않으면 세금 거두려고 담뱃세를 인상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일부에서는 담뱃세 인상 폭이 금연보다는 최대한의 세금을 거두는 것에 맞춰진 가격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법 미비 등의 이유로 담배 가격 인상 이전에 담배 제조사들이 많은 담배를 만들고, 매점매석에 나섰다. 그 결과 담배가 2015년 이후 유통될 때는 담뱃세 인상에 따라 담배 판매량 발표치는 왜곡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4년 담배 반출량에는 2014년 소비량 외에도 담뱃값 인상에 따라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들이 매점매석한 담배와 일반 소비자들이 미리 사둔 담배가 포함되어 있다. 자연히 2014년 담배 반출량은 실제 소비량보다 늘어난 수치가 집계된다. 반대로 2015년 담배 반출량은 실제 소비량 보다 줄게 된다. 담배제조사, 유통사, 소비자들은 담배가격 인상에 대비해 담배를 미리 지난해 사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담배 반출량을 단순 비교할 경우 담뱃세 인상에 따라 담배 소비가 줄어든 효과는 더 커 보이게 된다.

박영선 더민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담배는 43억6000만갑이 팔렸지만 2015년에는 33억3000만갑이 팔렸다. 24%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팔린 담배 판매는 36억8000만갑(올해 9월까지 판매량을 통해 추정한 예상치)으로 전년보다 11%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담배판매량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한 점 등을 감안하면 2015년에 담배 소비량은 그해 담배 생산량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해당 법안은 정부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국회 심사과정을 거쳤는데 왜 국회에서는 정부의 문제점에 대한 보완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당시 담뱃세 인상을 두고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여야 간 협상에 참여했던 야당 의원들은 당시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하다 보니 손볼 부분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담뱃세 관련 세법을 두고서 여야는 막판까지 종량세로 할 것인지, 종가세로 할 것 등을 두고 협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여야 협상에 참여한 한 야당 의원은 "일단 인상 폭이 얼마인가가 쟁점이었지,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는 두 번째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은 담배가격을 2000원 대신 1000원 올리려고 했는데, 정부 여당이 2000원 인상안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정부 여당이 담뱃세 올리는 것에만 치중해 다른 것들을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담뱃세 관련 세법은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되어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강행 처리될 수 있는 법안이었다. 이 때문에 이 법은 시간을 끌면서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부는 이미 담뱃세 인상을 통해 거둔 세금을 기반으로 예산안을 짜놨기 때문에 국회에서는 이 법을 두고 오래 잡고 논의할 수 없었다.) 담뱃세 관련법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회의장의 예산 직권상정이 가능해지는 12월2일이 처리가 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는 손쓰기 어려운 구조였던 셈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