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가 늘어나면 가계부채의 규모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양적 증가만으로 가계부채를 규제할 땐 또 다른 정책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금융사들의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고 차주의 상환능력도 양호해 가계부채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차주들의 상황은 다양하다. 일부 가계의 건전성에는 이미 '적색등'이 켜졌을 수 있다.
소득 수준별로 보더라도 가장 하위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은 2014년 953만원에서 지난해 988만원으로 3.7% 늘어났는데, 부채는 3784만원에서 3989만원으로 5.4%나 증가했다.
정밀한 가계부채 통계를 뽑아 이처럼 가계부채 총량이라는 숫자 속에 숨어 있는 '뇌관'들을 제거할 수 있는 맞춤형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통계에는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소득 상위 계층 자산가가 투자 목적으로 돈을 더 빌리는 것과 저소득층이 거주지 마련이나 생계를 위해 대출을 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고 가계부채로 잡힌다. 이를 떼내서 통계화해야 각 차주 사정에 맞는 대책이 가능하다.
가계소득이 부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비여력이 줄어들면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계는 세금, 건강보험료 등을 제외한 가처분소득의 25%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썼다.
동일한 규모의 가계부채라 할지라도 소득별, 연령별, 직업별, 원리금 규모, 만기 구조, 대출 용도, 담보대출 상환 구조 등에 따라 거시경제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문영배 나이스평가정보 CB연구소장은 "가계소득 회복세는 더딘데 가계부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가계 상환 여력이 악화됐을 수 있으며, 잠재부실률이 낮더라도 다중채무자 비중이 증가하는 등 리스크 상승 가능성이 혼재돼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부채가 어떤 유형의 차주를 중심으로 증가했으며 어떤 차주의 건전성이 취약한지 판단할 수 있도록 미시적인 통계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정밀한 통계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정확한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세청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과세정보라서 제공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과거에 대출을 받았을 때 기재했던 소득에 근거해서 현재 소득을 추정하는 방식을 쓰는데 좀 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모든 대출 정보를 취합하고 각 금융사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전산 시스템 구축 또한 절실한 과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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