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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이름이 뭐예요?

최종수정 2020.02.11 16:36 기사입력 2016.08.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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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

윤제림 시인

이쪽은 반가이 인사를 하는데, 상대가 별 반응 없이 지나가면 기분이 매우 언짢아집니다.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 것 같거나 존재감이 사라진 느낌이지요. 누군가 인사를 하면 어떻게든 받아야지요. 인사 받는 법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고개만 까딱해도 좋고, 빙긋이 웃거나 눈웃음만 보여도 좋지요. 손을 흔들어도 좋고, 대답만 해도 되지요.

 인사를 건넸는데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으면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내가 뭘 잘 못했나? 나는 저를 대접해서 고개를 숙이는데, 제까짓 놈이 뭐라고 목을 꼿꼿이 세우는 걸까?....혹시 그는 나를 모르는 게 아닐까? 다음부터는 나도 모른 체할까? 아니면, 무슨 유감이 있느냐고 따져볼까? 그러면 공연히 시비를 건다며 도리어 역정을 내진 않을까?'
 순간,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생각이 따라붙습니다. '혹시 내가 그렇지는 않았을까? 누군가 내게 공손히 인사를 했는데, 의식도 못하고 지나친 일은 없었던가? 나로 인하여 온종일 불쾌해지거나 우울해진 사람이 있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나를 만날 때마다 '영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없을까.'
 안도현의 시 한 편은 그런 상황의 무서움과 안타까움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나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윤제림의 행인일기]이름이 뭐예요?

 아무리 인사성이 밝은 사람이라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불안해집니다. 얼른 핸드폰을 켜서 '애기똥풀'을 검색할지도 모르지요. 늘 지나다니는 동네 어귀 공원의 여러 가지 꽃들이 눈에 밟힐 것입니다. 또, 회사 복도에 누군가 열심히 가꾸고 있는 화초의 이름이 알고 싶어질 수도 있지요. 제법 넓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관리사무소 앞 커다란 나무가 무엇인지 수위 아저씨에게 물을지모릅니다.

 그것들이 날마다, 그것도 같은 시간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몰라볼 리가 있었을까요.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서윤이 엄마, 오늘도 폭염이 대단하지요." "김 부장님, 오늘 옷차림이 시원해 보이네요." "택배 아저씨, 땀 좀 식히고 가요." 식물들뿐이겠습니까. 아침이면 감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402호 창문을 들여다보며 지저귀는 산새는 이렇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총각, 출근할 시간이야."
 서로가 서로의 존재가치와 이유를 알아준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가까이 살고, 자주 보는 얼굴일수록 그래야지요.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집이나 일터 근처에 살고 있는 나무와 풀꽃과 새들과 길고양이들 모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는 온 세상의 인사를 받는 사람이 되겠지요. 아는 만큼 친해지니까요. 인정해주는 만큼 인정받게 되니까요.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자면 이름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물어볼 수밖에요. 물론, 처음 보는 상대에게 불쑥 이름을 묻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꽃이나 나무라면 더욱 난감한 일입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알고 싶어도 알아낼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꽃은 많은데, 이름을 모르겠다. 어찌 하면 알 수 있을까? 생김새를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몽타주를 만들어 보여줄 수도 없고.'

 해결책은 가까이 있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요. '꽃 이름에 관한 갈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훌륭한 '지식의 샘'을 파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꽃 이름 검색' 앱(app)입니다. 반갑기 그지없더군요. 지체 없이 제 카메라에 담겨 있는 사진을 올리며 물었지요.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순식간에 전국 각처에서 '답 글'이 올라오더군요. 덕분에! 제가 그렇게 알고 싶어하던 꽃이 '가우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일터에도 있고, 아침 산책길에도 피어 있는 꽃입니다. 날마다 마주치는 얼굴이지요. 섹시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무척 예쁜 꽃입니다. 무슨 꽃일까 궁금해서 제가 가진 식물도감 화훼도감 모두 꺼내서 뒤져도 알 수 없던 꽃입니다.

 인터넷 시대, SNS 세상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갸륵한 일입니다. '앱' 하나가 참 많은 사람들이 꽃과 인사하고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꽃의 얼굴을 보여주면, 앞 다투어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들 그 어여쁜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저는 정말 간절히 알고 싶던 친구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가우라'. 이제 그녀의 인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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