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왔습니다. 그 카페에 왔습니다. '바다는 안 보여요'. 재작년 여름, 산길을 내려와 막 바닷가 마을 골목으로 접어든 제 발길을 멈춰 세우던 곳입니다. 간판을 보는 순간, 그 이름의 지은이가 궁금해졌고 작명의 사연을 알고 싶어졌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집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그 가게 밖 풍경과 간판 사진만 여러 장 찍어 왔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제주도가 생각날 때마다 그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또,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로 피어나는 자리에 가면 꼭 그 상호를 들먹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음 번 제주 나들이에는 꼭 그 집 찾아가기를 일정 속에 포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오늘, 정확히 이년 만에 저는 그 찻집의 손님이 되었고 주인도 만났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간판을 가리키며 어떻게 저런 이름을 짓게 되었느냐 물었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지요. "여기가 올레길 첫 코스 중간쯤에 해당하는 지점입니다. 이곳을 지날 때쯤이면 다리도 무거워지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요. 그이들을 위해서라도, 존재만으로도 작은 청량감을 안겨줄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바보 같은 이름이라고 웃던 사람들과 좋다고 박수를 치던 이들이 반반쯤이었는데, 이젠 대부분 좋은 느낌 쪽에 표를 던지더군요."
카페 주인의 대답은 제 추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매사에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문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일차원적으로 해결하는 쪽이 무엇보다 쉬운 해법임을 깨친 사람의 태도가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꾸밈없는 결론이 최상의 플롯일 수 있음을 배운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 카페 생각 끝에 문득,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릅니다.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우리 선희,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뜬금없고 느닷없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들 같지만, 사실은 내용을 정확히 아우르며 관객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하는 제목들입니다.
'바다는 안 보여요'가 마치 홍 감독의 영화제목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표현으로 손님의 취향을 저격하는 방식이 유사해 보입니다. 혼자만의 생각입니다만, 제주도에 온 사람들은 일종의 강박에 시달리지요. 일출을 볼 수 있는 호텔 방을 제일로 칩니다. 수평선이 내려다 보이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싶어합니다.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환상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뙤약볕이 쏟아지는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최상급의 커피를 마시길 원합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은 바다와 헤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제주도에 다녀온 사람 중에도 가장 고급의 시간을 보낸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설악산을 다녀온 동료나 백운계곡에 갔다 온 사람과는 확실히 선을 긋고 싶어합니다. 홍천강에서 고기를 잡다 온 이웃과 해운대에서 놀다온 친구와는 분명히 차별화된 기억을 가지려 합니다. 경쟁자나 비교대상이 없는 여름 추억의 주인공이기를 염원합니다.
'바다는 안 보여요'는 그런 욕구를 보기 좋게 뒤집어 놓습니다. 바다가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는 휴식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침대에 엎드려 바라보는 아침 해보다, 이른 새벽 민박집 골목을 돌아 나와 이십분쯤 걷다가 만나는 일출이 더 값진 풍경임을 넌지시 일러줍니다. 오름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가 더 경이로울 수도 있다는 힌트를 줍니다.
그 카페에 가면 정말 바다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이 고백한 대로 그 카페 창문 밖에 바다는 없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해변으로 이어지는 마을 골목길이 있을 뿐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부분대로, 전체는 전체대로 정갈한 풍경사진들이 사진첩처럼 펼쳐질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경주 수학여행에 가서 불국사여관이 불국사가 내려다보이는 여관이 아님을 일찍이 알았습니다. 하여, 설악산 산장 여관에서 대청봉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인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파크장여관이 창문 밖으로 공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옆 건물 콘크리트 벽만 보여 준다고 주인을 소리쳐 부르는 일도 없습니다.
'바다는 안 보여요'의 매력은 솔직함입니다. 단점을 긍정하면서 그것조차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의미도 발견된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보이는 것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의 전부가 아님을 가르쳐줍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호텔, 식당, 횟집, 카페…. 사장님들 힘내십시오.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바다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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