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 등 8가지 추경 선결조건을 내걸면서 열흘 이상을 까먹었다. 논란 끝에 여야 3당이 지난 8일 '추경안 22일 본회의 통과'에 합의하면서 추경안 심의에 들어가는 듯 했지만, 조선·해운업 부실화 책임 규명을 위한 청문회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야는 다시 격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9월1일부터 추경을 집행하겠다던 정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 '지역경제 활성화'다. 정부의 추경안에는 일자리 창출과 민생지원에 1조9000억원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2조3000억원이 배정돼 있다. 조선업 종사자 고용안정 지원 대상자 4만9000명, 청년 맞춤형 일자리 대상자 3만6000명, 취약계층 맞춤형 일자리 추가 대상자 4만4000명 등 13만명이 일자리와 관련한 직접 지원을 받는다. 관공선, 해경함정 등 61척의 선박을 신규로 발주함에 따라 중소형 조선사들의 일감도 생긴다. 조선업 밀집지역 관광산업 육성 자금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자금을 기다리는 국민도 적지 않다.
추경 투입을 통한 경기 방어를 위해서도 더 이상 정쟁에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여야가 당장 본회의를 잡아 추경을 처리한다고 해도 추석 전에 현장에서 집행되기는 쉽지 않다. 중앙정부 예산이 지방자치단체로 내려가 집행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추경은 타이밍'이라는 정부의 말도 설득력이 있다. 9월에 풀어야 할 돈을 10월이나 11월에 풀면 추경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금 같은 여야 갈등이 지속되면 추경이 물건너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추경이 실패하면 올해는 물론 내년 경제까지 더욱 어려워진다. 추경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는 없지만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중인 현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부실경영과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하지만 거기에만 매몰되면 애꿎은 서민들이 힘들어진다.
정치권은 지리멸렬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가 없다. 여당 지도자는 무책임하고, 야당 지도자는 무능하다. 당 지도부가 만나 머리를 맞대고 합의안을 도출해도, 의총에서 의원들이 이를 뒤집는 경우가 많다. 지도부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고, 협업 역시 불가능하다. 정치의 존재 이유도 없다. 2016년 8월, 지금 시점에서 민생과 경제 앞에 정치가 지향할 더 높은 가치는 없다. 정치는 경제를 위해 존재한다.
조영주 세종취재본부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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