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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별들과 함께 한 문금순씨 의경 대모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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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흥업영화사 사장 차태진씨 부인 문금순씨 현재 충무로에서 한식집 운영하며 영화인 사랑방 역할... 중부경찰서 의경어머니회 활동도 26년재 이어가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충무로하면 영화인들이 생각나요. 내가 별들과 살았구나...”

영화의 본거지 중구 충무로 흥망을 함께 해온 문금순씨(80)에게 충무로는 일생을 지내온 삶의 터전이다.
영화계에서 유일하게 충무로에서 살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영화사도 운영했던 문씨 내외에겐 충무로는 특별한 곳이다.

60년 초반 한국영화사 전성기를 이끌었던 충무로에서 영화사 극동흥업을 운영했던 차태진씨 부인인 문씨가 운영하는 작은 한식집 ‘장독대’엔 아직도 김기덕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드문드문 찾아온다.

원로 영화인들의 경조사며 소식을 주고받는 뉴스메이커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화하고 전 운명인가봐요. 내가 살던 집 바로 옆에 동화극장이라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극장이 있었죠. 극장 밖에는 갈 곳이 없어 놀이터나 다름없었어요.”

떡볶이로 유명한 신당동이 본적인 문씨는 중구 토박이 114호다.

어린시절의 대부분 기억을 차지하는 동화극장에서 당시 고춘자, 이은관, 황해 씨 등 만담가들의 악극과 연극, 활동사진 등을 보며 연예계를 어깨너머로 보는 계기가 됐다.

해방과 한국전쟁, 1·4후퇴를 겪으면서 이화여중·고를 졸업했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문씨가 평소 관심있었던 연예와 관련된 직종인 한국연예 경리직원으로 취직하게 된 것도 그녀에겐 운명이다.

당시 연예계 대부역할을 하며 민간자본을 최초로 끌어모아 영화산업의 토대를 닦았던 임화수를 사장으로 모신 문씨는“못배우고 무식했지만 추진력과 카리스마로 여배우들을 이끌고 재무부에 들어가 영화제작비 면세조치를 따내기도 했었다”며 그를 우리나라 영화산업 발전에 일조한 인물이라 회상한다.

임화수씨가 악극단 출신들이 만드는 당시 영화수준을 높이기 위해 찾은 기획자가 문씨의 남편이자 후에 극동흥업을 이끈 차태진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서 1959년 결혼 당시 임화수씨가 청첩인이었기에 영화인들이 결혼식에 많이 참석했었는데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기념사진을 잊어버린게 못내 아쉽다.

당시 평양에서 신학대학을 나와 신문사 편집국장 등을 역임해 문예에 조예가 깊은 엘리트였던 차태진씨 활동무대는 충무로와 명동이었다.
문금순씨

문금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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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시간이 있었던 그 시절 밤늦게까지 시인, 극작가, 미술가 등을 명동에서 만나며 영화 소재를 찾았던 차태진씨는 명동 구두닦이에게 물어보면 어디 있는 줄 알정도로 명동에선 유명했다. 그래서 영화사가 즐비했던 충무로일대와 명동을 떠나지 못하고 10여 차례이상 셋방살이를 전전해야만 했다.

그 덕분에 1959년 설립된 극동흥업은 '가정교사'(1962년), '아낌없이 주련다'(1962년),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1962년), '김약국집 딸들', '맨발의 청춘'(1964년), '떠날때는 말없이'(1964년), '초우'(1966년) 등 당시 한국영화 대표작 108편을 제작했다.

1960~1970년대 충무로는 영화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통금시간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는 차가 많지 않아 촬영차들이 신속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극동흥업이 있던 충무로 오거리를 중심으로 배우, 스텝, 극작가 등이 영화스케줄을 짜고 잠을 잤던 여관과 다방들이 즐비했다. 한마디로 영화 자원이 한 곳에 모인 셈이었다.

“영화는 생선과 같아요. 현장에서 생동감있게 찍은 영화를 유행에 밀리지 않게 바로 영화관에 올려야 흥행에 성공을 하죠. 충무로는 그 조건을 다 갖췄었어요”

충무로를 중심으로 위치했던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대한극장에는 당시 골목길 안쪽으로 줄이 끊임없이 이어질 만큼 관객이 많았다.

주요 관객층은 고무신을 신은 공순이부터 중산층까지 다양했다. 극동흥업에서 '맨발의 청춘' 등 청춘물을 제작하면서 관객층이 대학생들까지 확대돼 영화를 보려는 대학생들로 극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요즘 관객을 1000만명 동원해야만 영화가 유행했다고 하지만 당시엔 10만명을 넘으면 히트작이라고 해 영화사 직원들과 스탭진들에게 보너스와 같은 ‘만원사례’가 있었다.

극동흥업은 그 어느 영화사보다도 만원사례가 많았었다.

1960년 초반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였고 일반인들에게조차 충무로는‘한국의 헐리우드’라 불릴만큼 영화산업의 메카였다. 그 중심에 극동흥업이 있었다.

신인배우들이 신문지로 꽁꽁싼 돈뭉치를 들고와서 단역배우 역을 부탁할만큼 극동흥업을 거쳐가려는 배우들이 많았다. 윤일봉, 최무룡, 김진규씨 등이 당시 극동흥업의 전속 주연배우들이었다. 이들의 당시 월급은 8만원이었다.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와 월급을 주는 회계일을 담당했던 문씨는 영화인들의 부인들과도 친했다. 경제적 관념이 부족했던 자유분방한 영화인들보다는 살림을 맡는 부인들에게 월급을 주라는 차태진씨의 꼼꼼함 때문이었다.

단역 배우들은 영화가 끝나도 보수를 받지 못해 인근 상인들이 밀린 외상값 때문에 이들을 손님으로 받기 꺼려할 정도로 단역과 주연급 배우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렇게 성황을 누리던 충무로 영화산업은 1960년대 후반 TV영향으로 극장 손님이 줄어들면서 영화사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극동흥업도 1969년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맞는다.

영화사 운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1970년도부터 극동흥업 자리에서 시작한 설렁탕집 ‘설미옥’은 영화인들에겐 구수한 국물맛으로 유명한 맛집이자 영화인들의 소식을 전해듣는 사랑방으로 알려졌다.

현재는‘장독대’라는 상호로 바뀌었지만 둘째아들과 함께 충무로를 지키며 인근의 인쇄업자들과 전통음식을 찾는 이들을 맞고 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이들은 순박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이에요. 우리집이 그렇죠. 영화사가 망해서 도망다니면서도 충무로를 못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난 충무로가 편해요”

충무로에서 자유분방하던 영화인들과 한 시대를 보내며 청춘을 바치다가 지금은 옛 맛을 못잊는 평범한 시민들을 집에서 담근 구수한 된장찌개로 반기고 있다.

이 곳에서 두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문씨는 남편과 아들 때문에 수없이 드나들었던 중부경찰서와 인연으로 26년째 의경어머니회 봉사활동도 펴고 있다.

젊은 의경들 간식거리와 식사를 챙겨 주고 있는 문씨는 중구여성단체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지역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회의에 참석해 고문 역할도 맡는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가곡반과 동양철학반도 수강해 문인들과 함께 했던 시절처럼 젊게 생활하려 애쓴다.

“충무로가 살려면 명동과 이어져야 해요. 문예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임대료도 싸게하고 그럴려면 리모델링도 쉽게 해야 하고...”

문씨는 지금은 영화사가 모두 떠나가고 인쇄소와 보험회사로 메워진 충무로 골목길을 바라보며 문예와 영화의 중심이었던 충무로가 다시 번성할 그날을 그려본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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