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편 내편, 고용절벽 허물기]"나는 잡채, 너는 공채"…의욕 잘라 먹는 텃세
[니편 내편 해묵은 고용갈등 벗자]⑧공채와 경력,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직장·업무 속 존재하는 차별…이직 직장인 69% 경험
[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나는 잡채입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광고회사에 다니는 32세 직장인 A씨는 자신을 '잡채'라고 칭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공채(공개채용) 직원과 비(非) 공채 직원을 가리켜 공채와 잡채로 나눈다는 이야기였다. 지방대학 출신인 A씨는 "그야말로 잡채 중의 잡채"라며 혀를 찼다.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던 A씨는 지난해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 하청을 받던 곳에서 하청을 주는 곳으로 옮긴 것이어서 주변에서도 그렇고 본인도 많이 기뻤다. 회사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회사 내부에 묘한 분위기가 존재함을 느꼈다. 겉으로 확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공채와 경력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때 공채를 먼저 대우하는 식이었다.
A씨도 차별을 경험했다. 회사에서 해외 광고제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자신이 준비하는 프로젝트와 맞아 주변에선 A씨를 적임자로 추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른 직원이 가게 됐다. 알고 보니 윗선에서 경력인 A씨 대신 공채 직원이 가면 어떻겠느냐라는 한마디가 작용한 것이었다. A씨는 "같은 곳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데 공채가 아니라고 차별받는 것은 슬픈 현실"이라며 씁쓸해했다.
공채 직원과 수시채용으로 입사한 경력 직원 간 차별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결국 조직의 성공은 인재가 열쇠다. 인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생산성도 달라진다.
다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어 하나로 뭉쳐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회 균등과 공정한 대우' 문화가 자리잡을때 조직원 전부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직 직장인 1014명 중 38.8%가 전에 몸 담았던 직장으로 재입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재입사를 희망한 적 있는 직장인 10명 중 2명(16.2%)은 전 직장으로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직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로는 '업무가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서(45.5%ㆍ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잘 맞는 동료가 많아서(25.4%)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것 같아서(24.4%) ▲전 직장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서(15%) ▲현 직장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14.8%) 등의 답변도 있었다.
자리를 옮긴 현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이직 직장인 대부분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기존 직원들의 '텃세'다. 지난해 국내 대형 통신회사로 이직한 B씨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B씨는 회사에 적응하기까지 적잖은 고생을 했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 경력을 인정받고 들어왔으니 혼자서 잘해보라는 질투 식의 방관이었다.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봐야 했다. 어쩔때는 자신을 따돌리는듯한 경우도 있어 어디에 얘기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 B씨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별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B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2014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이직 경험이 있는 직장인 7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8.4%가 이직 후 기존직원들의 텃세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챙겨주는 듯 하면서 은근히 따돌릴 때' (48.2%) 가장 크게 텃세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인만큼 스스로 해보라며 자료를 공유하지 않을 때' (44.9%), '대부분 내가 모르는 주제로 대화할 때' (34%), '업무 성과가 잘 나와도 축하대신 경계할 때' (29.1%), '공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할 때' (18.3%)등의 답변도 이어졌다.
건설사에 재직 중인 공채 출신 C씨도 사내에 알게 모르게 공채에 대한 배려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C씨는 "재작년 이집트로 파견근무를 갈때 비자발급, 현지 거주 문제 등 세세한 부분을 회사에서 다 챙겨준 반면 경력 직원은 상대적으로 덜 케어해줬다"고 말했다.
공채는 1957년 삼성그룹이 민간기업 최초로 적용하면서 시작됐다. 반세기가 흐른 현재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공채에서 경력직으로 바뀌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고용보험에 가입한 공채는 7만9023명이었던 반면 경력직은 39만7652명에 달해 공채의 5배 수준이었다.
경력직 위주의 사회로 변하고 있지만 조직 내부적으론 여전히 공채로 대변되는 순혈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는 채용 및 평가 시스템이 제도화 돼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재성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순혈주의는 한국처럼 위계질서가 강하고 서열의식이 강한 사회에서 나타난다"며 "자신과 상대를 끊임없이 구별지으며 사회에 한정돼 있는 권력, 지위, 명성 등을 독점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직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학연ㆍ혈연ㆍ지연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의해서만 평가와 채용이 이뤄지는 직무 베이스 중심의 사회가 제도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