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수단으로만 여기거나 유통업에 대한 이해도 하락시
유통업의 본질 놓치고 단기적 성과에만 매달릴 수 있어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외식업계 종사자인 장모씨는 최근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이탈리안 레스토랑 전문점인 M브랜드의 강남역점을 찾았다가 기분을 망쳐버렸다. 식사 도중 손가락 한 마디만한 집게벌레가 나온 것. 급기야 그날 저녁에 자녀 중 한 명이 배탈이 났다. 해당 업체에서는 제조물책임보상보험 범위 내에서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다음날 다시 말을 바꿨다. 회사가 사모펀드로 넘어가기 전에는 보상체계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없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이 회사를 운영했던 모회사는 2014년 사모펀드인 스탠다드차타드 프라이빗에쿼티(SCPE)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별도법인을 신설해 해당 레스토랑만 분리했다.
'홈플러스, 킴스클럽, 웅진식품, 버거킹코리아, 오비맥주….'
최근 국내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사모펀드로 운영권이 넘어가고 있다. 다른 업종보다는 상대적으로 유통업이 수익성을 높여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쉽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사모펀드가 유통업계로 진입하는 경우가 유독 많아진 것이다. 투자활성화, 기업가치 상승 등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반면 유통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덩치만 키우는데 급급해 서비스의 질은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구조조정, 업종에 대한 이해도 하락 등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던 킴스클럽은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운영권이 넘어갔다. 이랜드는 우선협상 대상자로 KKR을 선정, 한 달여 기간동안 최종실사와 매각가를 확정하고 상반기 중 킴스클럽 매각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킴스클럽은 식료품과 공산품 유통에 특화돼있으며 이랜드리테일의 백화점과 아울렛 등 유통 매장의 식품관 개념으로 입점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양사가 지속적인 파트너쉽 관계를 가지고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이랜드 측 설명이다. 기존 직원들에 대한 고용승계도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이들 외에도 코웨이와 네파가 MBK파트너스에 매각됐으며 식음료업계에서는 웅진식품과 오비맥주 등이 각각 한앤컴퍼니, KKR로 넘어갔다. 외식업계에서도 사모펀드 진출은 활발하다.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는 올초 버거킹코리아의 100% 지분을 보유한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와 버거킹코리아 매각을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가는 21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는 2012년 두산이 버거킹을 매각했던 1100억원 대비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사모펀드로 넘어간 뒤 외형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2013년 162개였던 매장은 2014년 199개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직영 170개, 가맹 61개로 231개가 됐다. 올 2월 기준 매장 수는 236개로 늘어 3년만에 45.6% 증가했다.
수년째 재무구조가 악화돼 존폐기로에까지 섰던 커피전문점 카페베네는 지난해 말 사모펀드인 케이쓰리제5호(K3제5호)에 매각됐다. 카페베네는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향후 부채비율이 865%에서 3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승우 카페베네 대표는 지난 달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 6월까지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며 하반기부터는 충분히 흑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면서 "올해 매출 1134억원, 영업이익 10% 이상, 해외 매출 200억원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18년까지 매장 1000개를 내고 국내 매출 1320억원, 해외 매출 300억원을 달성, 영업이익률 10%대의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보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사모펀드가 유통업체 구원투수로 나선다는 데에는 긍정적이지만, 몸집을 불려 되파는데에 치중해 유통업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확장, 매출 확대를 위한 가격인상, 서비스 질 하락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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