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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도서관 공공성…웃지 못 할 '꼼수' 부른다

최종수정 2014.12.20 15:27 기사입력 2014.12.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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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종도서관 전경(기사와는 관련 없음)

▲국립세종도서관 전경(기사와는 관련 없음)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 대학생 김모씨는 몇달 전 한 도서 관련 단체에서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대학 도서관에 단체가 추천하는 특정 도서를 신청하면 그 단체로부터 책 값의 일부를 지급받는 것이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도서를 신청했지만 도서관 측으로부터 "전공과도 관련 없는 학술서를 왜 신청했느냐"는 핀잔만 듣고 무안함만 느꼈다.

출판시장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요가 크지 않은 학술서 판매를 위한 각종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판 100부를 팔기 어려운 출판사들의 열악한 현실이 빚어내는 행태라면서 근본적으로는 도서관의 공공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서 관련 A단체에서는 최근 몇년 간 온라인 상에서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모집해 대학도서관이 학술서 등의 도서를 적극 구입하도록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모교의 대학도서관에 A단체가 추천한 도서를 비치해달라고 신청하면 A단체에서 학생들에게 책 값의 10%가량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 단체가 추천한 책 가운데는 1~3만원 가량의 단행본도 있었지만, 10~50만원 상당의 학술서가 많았다. 이 중 몇몇 도서의 경우 서울시 내 각 대학도서관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A 단체가 사실상 특정 출판사들의 서적 판매를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이 단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적들은 대부분 B출판사를 비롯해일부 출판사들이 출간한 책들이 많았다. 이 단체가 대학생들에게 추천한 도서도 대개 특정 출판사들의 책이었다.

이 단체 관계자는 "대학도서관의 책 구매는 저조한 반면, 저작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어 현재 10여개 출판사와 함께 출판문화 개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며 "학생 추천도서 구매를독려하는 것은 대학도서관들이 교수ㆍ교원들이 원하는 책 위주로 구입하는 경향이 있어 좀 더 학생들에게 필요한 도서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한 것"라고 말했다.
대학도서관들은 이 같은 꼼수가 골칫거리다. 서울시내 한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학생들이 신청한 도서 중 99%는 구입하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특정 출판사의 도서를 집중 신청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얼마 전 부터는 1인당 구매 제한액수를 두고, 실제 전공과 불일치 하거나 특이한 징후가 있다면 직접 전화연결로 확인하다보니 많이 사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같은 '편법'은 학술서 시장에서 드문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심할경우 초판이 100~200부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학술서 시장이 워낙 작다보니 대학도서관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라며 "전국에 있는 200여개 대학에 한 권씩만 팔려도 운영에 도움이 되는데다, 학부 수업 교재로 지정되기라도 하면 최소 수십권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공도서관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16개 시ㆍ도(세종시 제외)의 내년도 자료구입비는 50억7100만원으로 지난해 45억6500만원에 비해 11%가량 상승하는데 그쳤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도서관 역시 15% 이하의 할인율을 받게 된 만큼, 실질적으로는 구매력이 약화 된 셈이 됐다.

대학도서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전체 예산대비 자료구매비 비중은 2009년 1.1%에서 지난해 0.9%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대학도서관에서 구입하는 자료의 57.8%는 전자 논문 DB(데이터베이스)인 것으로 조사돼 학술서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출판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학술서ㆍ도서 판매촉진에 나서는 것은 공공ㆍ대학도서관이 구매시장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방증한다"며 "출판시장을 정상화 시키고 지식ㆍ정보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양서(良書)의 유통이 활발해 질 수 있도록 도서관의 제 기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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