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보인 김우중 "역사 앞에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아시아경제 김승미 기자]26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그랜드 홀. 굳은 얼굴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8·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색 체크 셔츠에 남색 넥타이, 짙은 회색 정장 차림의 김 전 회장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가 입장하자 전ㆍ현직 500여명의 대우가족들은 기립 박수로 그를 맞았다.
이날 행사는 옛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대우그룹 워크아웃 15주년과 김 전 회장의 대화록인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관련기사 본지 8월25일 9면
단상에 오른 김 전 회장은 반듯한 흰 종이를 꺼내서 읽어내려갔다. 담담한 목소리로 "나뿐만 아니라 대우분들에게 억울함도 있고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없으므로 감수하려고 했다"며 그간의 소회를 털어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잘못된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지난 일에 연연하자는 게 아니라 역사의 일을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며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며 "그것이 국가와 미래 세대에 대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여기에 반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한 대우그룹은 1999년 8월26일 ㈜대우를 비롯한 12개 계열사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결국 해체됐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추징금은 이후 23조원으로 불었다.
김 전 회장은 이어 "우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서 과거보다 나아지는 미래를 살아야 한다"며 "과거의 잘못된 실수가 미래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제 저는 미래를 가져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됐다"며 "남은 평생 마지막 봉사인 '글로벌청년사업가(GYBM)'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해외로 뻗어 나가도록 성심껏 도와주려고 한다"고 성원을 당부했다. 5분간의 짧은 인사를 끝낸 김 전 회장은 서둘러 빠져나갔다. 취재진들이 추징금에 대해 묻자 그는 "나중에 답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온갖 감정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주 공개한 책에서 '대우그룹 기획 해체설'에 불을 댕겼다. 저자인 신장섭 국립싱가포르대 교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와 비견될 만한 기업가인 김 전 회장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명 '김우중법'으로 불리는 추징법안에 대해 "대우 몰락, 징역형 선고에 이어 23조원 추징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가를 세 번 죽인 '부관참시'였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대우그룹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들을 향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대우자동차 인수 요청 ▲수출 금융 중단 ▲워크아웃 사전 검토설 등 9개 쟁점에 대해 공개 해명을 요구했다.
이런 주장에 김대중 정부 관료들은 "대우는 자구 노력 없이 정부 지원에 기대다가 좌초했다"고 반박했다. 강 전 장관은 이날 한 인터뷰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가 1년 만에 극복됐고, 다른 재벌과 달리 대우만 자구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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