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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다시보기]13-② "10만평 부지가 다 우리 소관" 국회 조경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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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잔디밭·나무 17만그루 '돌봄이'
비료 포대 들고 걷기 시험 통과해야

헬기에서 내려다 본 국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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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국회에는 사계절의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화려한 봄의 전령사가 됐다가 늦가을이 되면 부지런히 월동 준비에 나서기도 한다. 30여명의 국회 조경관리사 이야기다. 국회 부지 10만평에 있는 잔디밭과 17만여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 실내 정원 등이 모두 이들 소관이다.

국회 조경관리사는 모두 55세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들로, 해마다 영등포구청에 구직신청을 한 지원자들 가운데서 채용된다. 최근 만난 A씨는 국회 잔디광장과 중앙 분수대 주변에 심어진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한낮 30도를 넘나드는 날씨였다. 쉴 새 없이 물이 쏟아져 나오는 긴 고무호스를 들고 이동하며 물을 주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해 보였다. "일이야 힘들지만 집에 있어봤자 뭐해. 용돈 때문에 자식들 눈치 보기도 싫고, 자주 움직여야 건강해지니까. 그리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궂은 일을 하려고 하겠어?"
국회 조경관리사로 일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25명을 뽑는 자리에 80~90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채용 전형에는 화분 교체부터 비료 포대 10㎏(여), 20㎏(남)짜리를 들고 걸어보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실기시험도 포함된다. 현재 조경관리사 중에는 28년 동안 일한 여성 조경관리사, 최고령인 71세 전모씨도 있다. 탁월한 조경관리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이들도 매년 동등하게 시험을 봐서 채용된다. 한 달 기본급은 남자의 경우 117만5100원, 여자는 110만7700원으로 연차와 무관하게 일정하다.

이들은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일한다. 여자 조경관리사들은 겨우내 잔디를 덮고 있던 짚을 걷어내고 팬지 같은 색색의 봄꽃을 심으며 국회에 봄이 왔다고 알린다. 수시로 잡초를 뽑고, 석 달에 한 번씩은 꽃을 교체한다. 여름을 앞두고는 주로 피튜니아, 가을에는 마리골드, 겨울엔 꽃양배추를 심는다. 남자 조경관리사 15명은 잔디 깎기, 가지치기, 병충해 방제 작업 등을 위주로 한다. 국회 곳곳에 있는 조경 시설물의 보수 작업도 이들의 몫이다. 야외 행사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가 주변 경관을 정돈한다.

국회 조경관리사들이라고 항상 국회 안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조경관리사들은 국회 밖으로 '외근'을 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일주일 중 이틀은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일한다. 최근 후반기 국회가 시작되면서 국회의장이 바뀌어 공관도 새단장을 하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공관에 입주하는 날에 맞춰 공관 마당의 잔디 깎기, 연못 청소 등 분주했다고. 강화도에 있는 국회연수원의 조경도 이들이 관리한다.
의원회관에 있는 의원실의 화분만을 전담하는 인원도 6명이 있다. 일일이 화분을 닦고 시든 잎을 정리하고 물을 준다. 의원실 화분을 관리하는 한종배씨는 이들을 대표해 국회에서 지난봄 열릴 예정이었던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본인의 환갑을 기념한 이벤트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예선전 장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세월호 사고로 대회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쉽기도 했지만 희생자 가족들 심정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세월호 참사 이후 조경관리사들은 안전문제에 보다 신경을 쓰고 있다. 국회 본관 측면은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데, 이 때문에 주변의 나무들이 조금씩 기울어져 있을 정도. 최근 이 나무들을 받쳐주는 지주목을 모두 교체했다.

조경관리사들의 감독관은 국회사무처 시설과 소속 안영기 주무관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번 기상청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비가 내리면 모든 조경관리사들이 실내 화분 관리나 장비 수리 등 건물 안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조회부터 시작해 종일 조경관리사들과 야외 작업을 한다는 그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다. 그는 "'한 국회의원께서 음료수를 챙겨줬다'는 등의 푸근한 얘기를 조경관리사들로부터 들으면 기분이 좋다"며 "국회의 환경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갖고 하루하루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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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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