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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전쟁과 평화가 만들어 낸 '역설의 섬' 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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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신성만 연평면장이 연평도 북단 관측소에서 북한 해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신성만 연평면장이 연평도 북단 관측소에서 북한 해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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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가 만들어 낸 '역설의 섬' 연평도.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대규모 포격 훈련을 한 지 24시간 가량 지난 1일 오후 이 섬을 방문한 이들에게 연평도는 의외다 싶을 만큼 평온한 모습이었다.

밖에선 당장 전쟁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까지 감돌았지만 정작 연평도 내부에서는 이 같은 긴장감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2010년 포격 사태 이후 꾸준히 인구가 늘고 공사도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는 등 섬 전체에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주민들은 생계 보조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취로 사업에 참여해 작업 중이거나, 농사를 짓고 집 수리 작업을 하는 등 일상 생활에 흔들림없이 종사하고 있었다. 연평면 보건소 지하 대피소에 차려진 주민운동시설에서 운동 중이던 강정희(40)씨는 "어제 대피 경보를 듣고 대피소로 왔었지만 집에 그냥 있는 분들도 있었다. 대피가 자율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외부인들의 호들갑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눈빛이었다.
연평도에서 가장 규모가 커 평상시 주민 행사용으로 쓰인다는 제1호 대피소에서 만난 최성일 주민자치위원장도 "한달에 한 두번 꼴로 대피명령이 떨어지는데, 그냥 집에 계신 분들도 20% 정도 된다"며 "2010년에 그 난리를 한 번 경험해 본 주민들이 이제는 그렇게 큰 위협으로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010년 포격 사태 때 바로 20m 옆에서 포탄이 터지는 것을 봤다. 지금도 포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에 떤다"며 '트라우마'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이날 둘러본 연평도는 조기와 꽃게의 풍어로 활력이 넘쳤던 시절 이후 가장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계속 줄어들기만 했던 섬 인구가 2010년 포격 사태 이후 20%에 가까운 300여명이나 늘어난 게 단적인 사례다.

연평도가 '안보 관광'의 최전선으로 부각되면서 관광객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2010년 당시 포격을 받고 파괴된 일부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존해 '안보교육장'으로 조성해 놓은 후 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예전엔 여름철에나 문을 열던 식당들도 공사장 인부ㆍ관광객들을 상대로 성업 중인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덕분에 섬 전체의 활력이 되살아났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신성만 연평면장은 "정부가 포격 사태 이후 정주 수당(5만원)을 주고 집도 고쳐주고, 취로 사업도 지원해주고 하니까 연평도에서 태어나 육지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 직장을 은퇴한 노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며 "집 수리ㆍ대피소 신축 등 공사장이 늘어나면서 공사 인력들이 많이 유입된 것도 인구가 늘어난 한 원인"이라고 전했다.

이날 마지막 방문지였던 연평도 최북단의 옛 군용 관측소에선 남북 분단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인 눈에 들어왔다.

이 곳에선 북한 해주 쪽 석도ㆍ길도ㆍ장제도 해역이 내려다 보였다. 중국 어선 3척이 우리 측 수역인 NLL을 약 3~4km 이상 침범해 연평도에 바짝 붙어 조업 중이었다. 이곳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이 10.4 공동 선언을 통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어 '남북공동어로구역' 설정해 중국 어선들의 막무가내 싹쓸이 조업을 막고 남북한 어민들이 사이좋게 조업하기로 합의했던 그 '황금어장'이었다.

이날도 중국 어선들은 북한이 1000만원 가량의 돈을 받고 내준다는 빨간 인공기를 건 채 우리 해군ㆍ해경의 단속도 없이 NLL 남쪽 해역에서 열심히 물고기를 낚는 중이었다.

안내를 맡은 신 면장은 "저 곳이 꽃게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는데, 중국 어선들이 쌍끌이로 싹쓸이 해가면서 이제는 전부 사라졌다"며 "이로 인해 연평도 꽃게가 귀해졌고, 주민들이 정말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과 북은 휴전선과 NLL이라는 선을 그어 놓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중국 어민들이 꽃게를 잡아다 다시 한국으로 수출해 이득을 챙기는 기막힌 현장이었다. 더구나 남쪽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라는 실체도 불분명한 '유령'으로 한동안 홍역을 앓기도 했던, 바로 그 섬 앞바다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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