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하이든[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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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첫 주자로 나선 이승훈이 남자 5000m에서 12위에 머물렀다. 4년 전 은메달리스트가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마지막 조로 출전해 앞서 경기한 빙상 강국 네덜란드 선수들의 좋은 기록에 적잖은 부담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육상과 빙상은 대표적인 기록경기여서 이변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단 몸 상태, 경쟁 선수들의 기록이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 등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이승훈의 경우는 두 가지 변수가 모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런 변수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모든 세부 종목을 휩쓰는 이들이 있다. 이름 하여 전관왕이다. 대표적인 기록경기인 육상은 올림픽 세부 종목(개인 남자 트랙 기준, 허들 제외)이 100m부터 마라톤까지 8개 종목으로 나뉜다. 그런데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는 중거리인 400m와 800m, 1500m는 물론 장거리인 5000m와 1만m 그리고 마라톤에서도 세계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 마라톤은 완주도 장담하기 어렵다. 육상경기 전관왕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 대표적인 빙상경기인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육상으로 치면 100m와 마라톤까지 모든 세부 종목을 휩쓴 올림픽 영웅이 둘이나 있다. 한 명은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에릭 하이든(미국)이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뉴욕 주) 대회에서 500m, 1000m, 1500m, 5000m, 1만m 등을 석권했다. 모든 종목에서 남긴 발자취는 당시 기준으로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1만m는 올림픽 신기록이자 세계신기록이었다.


또 한 명의 영웅은 옛 소련의 리디아 스코블리코바다. 소치 대회 개막식 성화 최종 주자로 나선 이리나 로드니나와 블라디슬라프 트레티아크가 러시아(옛 소련 포함)의 피겨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를 상징한다면 스코블리코바는 스피드스케이팅을 대표한다.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에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500m 1000m 1500m 3000m)을 이뤘다. 3000m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은 모두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인스부르크 대회는 북한의 한필화가 한반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꽤 알려져 있다. 한필화는 3000m에서 옛 소련의 발렌티나 스테니나와 공동 은메달을 차지했다.

스코블리코바가 하이든보다 16년이나 앞서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서 냉전의 시기였고 당시 한국의 겨울철 종목 수준이 워낙 낮았다. 관심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스부르크 대회에 한국은 임원 4명과 선수 7명의 단출한 선수단을 파견했다. 최영배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17위를 한 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여자 500m와 1000m에서는 김혜숙이 각각 20위와 26위를 기록했다. 스키 종목에서는 실격하거나 완주에 실패하는 등 세계 수준과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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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블리코바는 1960년 스쿼밸리(캘리포니아주) 대회 1500m(당시 기준 세계신기록)와 3000m(올림픽 신기록)에서도 우승해 2014년 현재 남녀 통틀어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선수로 남아 있다. 그때 기준 첫 번째로 동계 올림픽에서 6개의 금메달, 단일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이기도 하다. 인스부르크 대회가 끝나고 두 달 뒤 일본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스코블리코바는 다시 한 번 전관왕이 됐다. 스코블리코바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끌어 모은 금메달은 25개나 된다. 한마디로 스코블리코바는 1960년대 초반 빙속 여왕이었다.

가루이자와 대회를 끝으로 스케이트화를 벗은 스코블리코바는 3년 뒤인 1967년 현역으로 복귀해 그해 1월 3000m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스코블리코바의 나이 28살 때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한창 나이지만 그때 기준으로 보면 ‘할머니급’이었다. 그리고 1968년 그르노블(프랑스) 대회에 자신의 선수 생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3000m에서 6위를 차지했다. 기록은 5분08초. 21살 때 처음으로 출전한 스쿼밸리 대회에서 수립한 올림픽 신기록 5분14초2를 6초 이상 단축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살에. 1500m에서는 11위에 그쳤지만 노장의 불꽃은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 번 피어올랐다.

스코블리코바는 그르노블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로코모티브’ 클럽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1973년 34살의 나이에 만학을 시작, 1979년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 교수가 됐다. 1983년 소련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됐으며 12년 동안 러시아빙상경기연맹 회장직을 맡았다. 은퇴 뒤 선수 생활 때문에 일시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해 정형외과 전문의로 변신,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주치의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이든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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