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에 미친 한 예술가의 스튜디오…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의 이야기 다뤄..1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미국 추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예술작품이 상업적으로 바뀌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작품이 한참 주가를 높이던 1950년대부터 붉은 색의 이미지에 천착한 그는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까봐 두렵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런 마크 로스코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바로 '시그램 사건'이다.
1958년 마크 로스코는 뉴욕 시그램 빌딩에 있는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면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받는다. 그는 피카소, 잭슨 폴록 등의 동료들과 레스토랑의 벽면을 장식할 계획을 세우고 채색 스케치에 들어갔지만 이내 계약을 취소하고 만다. 비싼 레스토랑에 자신의 작품이 생명력을 잃고 소모품처럼 쓰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로스코는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된다. 이는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 뿐"이라고 강조한다.
연극 '레드'는 이런 마크 로스코의 예술세계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마크 로스코와 가상의 인물인 그의 조수 '켄'이 벌이는 미술, 더 나아가 예술에 대한 설전이 100분에 걸쳐 밀도있게 펼쳐진다. 2010년 제64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등 6개 부분을 휩쓴 최다 수상작이자 2011년 한국 초연 당시 평균 객석점유율 84%를 기록하며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작업실로 꾸며진 무대에서 로스코와 켄은 물감을 섞고, 캔버스를 짜며, 슈베르트를 듣다 밥을 먹고, 토론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일반인들로서는 어려운 미술사조와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결국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귀결이 된다.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마크 로스코 역을 맡은 배우 강신일은 말한다. "마크 로스코는 1950~1960년대 추상주의의 대가로 불렸던 화가로, 특히 '레드'에 심취했었다. 말년에 그의 작품은 '레드'에서 '블랙'으로 옮겨갔고, 결국 1970년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자살했다. 극중에서 로스코가 빛이 없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에 대해 두렵다고 말을 하는데, 어느 한 순간 그의 공포가 이해가 됐다. 그의 작품이 레드에서 블랙으로 옮겨갔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
극중에서 나누는 로스코와 켄의 대화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진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19세기 인상주의는 20세기 입체주의에게 자리를 내주고, 입체파의 큐비즘은 다시 추상주의로 인해 물러나야 했다. 극 중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해야 하지만 살해해야 한다"고 말한 로스코 조차 끝내 조수인 켄의 공격을 받고 만다. 로스코는 "미술에서 용기란 텅 빈 캔버스와 맞서는 게 아니라 마네, 벨라스케와 맞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강신일 배우는 "이 연극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것이아니라 세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과정을 소통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2014년 1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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