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지리 소송 패소, 수험생·학부모 거센 반발(종합)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출제오류 소송에서 패소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향해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관련학회와 현직 지리교사들까지 나서서 오류가 있다고 한 만큼 승소 가능성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패소 판결이 나오자 허탈감에 빠졌다. 그러면서 오류 가능성이 제기된 직후부터 법적 대응에 이르기까지 평가원의 태도와 대처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평가원 게시판 비난글 이어져=17일 평가원의 게시판에는 판결과 관련된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모씨는 "수험생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대형로펌까지 거금을 들여 섭외한 여러분(평가원)은 초등학생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야구 방망이까지 들고 나온 중학생 양**(비속어) 패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찌 보면 결론이 나 있던 싸움에도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위해 떳떳하게 싸웠고 따라서 부끄럽지 않다"면서 "3점보다도 더 큰 가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모씨는 "지금까지 출제된 수능에서는 알 수 없거나 일부라도 틀린 지문은 옳은 것으로 고르지 않았는데 이번 수능만 법원에서도 명시한 '시기에 따라 옳거나 틀린 지문'을 옳은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확실한 것인가"라고 따지고는 "옳지 않은 지문으로 봐야하므로 선택할 수 있는 답지는 없다. 교육부는 명백히 문제출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능 없이 대학에 진학해 현재 대학원생이라고 밝힌 김모씨는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한 이의신청을 묵살하는 행위를 보며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다"면서 "문항을 잘못 출제하였으니 수험생에게 석고대죄는 하지 못할망정, 출제위원, 감수위원, 출제위원장, 관련 학회, 교육과정평가원이 서로가 일심단결하여 힘없는 수험생,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어 "어찌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기관이 대형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하기까지 하면서 이들을 억누르는 것인가"라고 따지고 "평가원은 이 문항에 대해 전원 정답인정을 하고 평가원장은 사퇴하라"고 말했다.
◆"힘내라, 끝이 아니다" 격려도=재판정에 있었다는 한 수험생은 "판결문 낭독을 하러 들어오시는 재판장님 얼굴에서 기각을 읽었고 판결문 한 장이 넘어가기 전에 확신했다"며 "그때부터 옳고 그름을 떠나서 판결을 듣고 앉은 학생들만 신경 쓰였다. 마음으로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 수많은 카메라 조명 속에서 인터뷰하신 재판에 참여하신 학생분들, 그 뒤에서 말씀하시는 거 듣다가 집으로 가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리교육과 지원하신다는 학생분의 얘기는 정말 가슴 아팠다"면서 "힘내십시오. 끝이 아니다"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 이걸씨와 소송대리를 맡았던 박현지 변호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허탈함과 아쉬움을 전했다. 이걸씨는 "수능이라는 건 자신이 얼마나 학업에 열중했느냐 그걸 평가하는 건데, 그 학업에 열중한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평가원의 재량에 얼마나 맞춰 놀아났느냐, 그것만을 따진 것 같아서 참 허탈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다른 수능 문제도 다 지도에 나와 있는 연도가 기본적인 기준이 됐었고 이것도 2012라는 숫자가 있으니까 지문 자체는 연도가 없었다"면서 "그렇다면 당연히 2012년도나 아니면 최근 연도를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건데. 과거 통계수치만 반영된, 교과서대로 그냥 풀어야 된다고 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수험생 학부모로 이번 소송에 참여한 김효선씨는 한 방송에 출연,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평가원의 변호인단에는 대형 법무법인 광장 소속 6명의 변호사가 참여했고 이 중에는 가정법원장을 지낸 고위직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인 수험생을 대리해서는 변호사 한 명만 참여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재판부가) 굉장히 호의적인 줄 알았는데 (패소했다)"면서 "변호사 선임에서 저희가 너무나 불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소송 원고들 "억울, 허탈, 전관예우 의혹"=소송이 제기된 세계지리 8번 문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만을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로, 평가원은 'A(유럽연합)는 B(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인 'ㄷ'항을 맞는 설명으로 제시했으나 일부 수험생들은 인터넷 기사 등을 근거로 NAFTA(18조달러)가 EU(17조5000억달러)보다 더 크다며 오류를 지적했다.
평가원은 수능 시행일인 지난달 7~11일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은 뒤 이의심사실무위원회와 이의심사위원회를 열어 접수된 이의사항을 심사, 그달 18일 모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수험생 38명이 지난달 29일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수능 등급을 결정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이달 초에는 수험생 21명이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참여자가 59명으로 늘어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질문이 다소 애매하더라도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풀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문제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수험생 21명이 추가로 제기한 소송도 재배당 절차를 거쳐 함께 패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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