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린다, 천사가 나타나는 오후 2시를"
하반신 마비 환자와 활동보조인의 5년 동고동락(同苦同樂)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내 이름은 우경원(62·남). 두 다리를 못 쓴다. 처음부터 걷지 못한 건 아니었다. 특전사로 군 생활을 마치고 제과점, 피혁공장 등에서 돈벌이를 했다. 스물아홉 꿈 많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열차사고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1979년 5월 봉급날이었다. 남춘천역 근처 술집에서 한 잔 걸치고 겁도 없이 철길을 무단 횡단했다. 취기가 오른 탓에 돌진하는 화물차를 미처 보지 못해 그대로 충돌했다. 몸이 붕 날아올랐고 이후 기억이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의사는 '경추를 심하게 다쳐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모한 객기가 부른 참사였다. 그렇게 30여년을 하반신마비 환자로 지냈다.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 석사 3지구에 위치한 지은 지 20년이 넘은 40㎡(약 12평) 아파트.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다. 아침에 잠을 깨지만 난 그대로 누워 있는다. 인사를 건넬 이도, 아침밥을 함께 할 이도 없어서다. 침대 주변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물건들. 구식 라디오를 켜고 손을 뻗어 봉지 커피를 타 마시는 사치를 부려보기도 한다. 우리 집에 숟가락, 젓가락 보다 많은 것이 시계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모으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12개의 시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외로움을 참을 만했다.
시계가 오후 1시30분을 가리킨다. 이제 일어날 채비를 해야 한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오후 2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침대에 누운 채로 그를 맞기는 싫다. 현관문 앞에서 그를 맞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일과이자 최대의 기쁨이다. 침대에서 현관까지 고작 열 걸음도 안 되지만 나는 그 거리를 십분 넘게 사투를 벌여야 도착할 수 있다.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지만 나는 이 고단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또 나와 계셨어.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오후 2시. 시간에 맞춰 현관에 들어선 그녀가 눈을 흘긴다. 그녀가 바로 기다리던 '오후 2시의 천사' 김민정(57·가명)씨다. 민정씨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이다. 나처럼 혼자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일을 한다.
민정씨와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 춘천시재활센터에서 '새로 아저씨를 돌봐줄 사람'이라며 웬 아줌마 한 명을 소개했다. 그때가 2008년 8월1일이었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사람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식사를 내오고 소변을 받아내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갔다. 감정 없는 자동인형 같았다. 그녀도 그러려니 "안녕하세요", 건조한 첫 인사를 건넸다.
2005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목욕은 연례행사처럼 했다. 여자 간병인은 남자 환자를 목욕시키는 것을 남세스러워했다. 나 역시 지천명(知天命)을 넘기고도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술을 진탕 먹고 나면 침대에 오줌을 쌀 때가 많았다. 사타구니에 말라붙은 오줌 때문에 지린내가 진동했지만 차마 씻겨달라고 하지 못했다.
그날도 소주 3병을 마셨다. 취기 탓에 침대에 오줌을 흠뻑 싸고 민망함에 자는 척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불을 들추고 '씻어야 겠다'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무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저는 도와주러 온 사람 이예요. 여자로 보면 안 돼요. 혹시라도 수치심 갖지 마세요"라고 선수를 쳤다.
나는 170㎝가 조금 넘는 키에 몸무게는 48㎏이다. 보통 남자보다 가벼운 편이지만 몸을 가누지 못해 나를 옮기려면 장성이라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도 민정씨는 싫은 내색 없이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시켜준다. 화장실은 늘 물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한다. 혹시라도 내가 넘어질까 봐서다. 이발을 해주겠다며 인터넷으로 바리캉, 보자기 등 이발세트도 샀다. 그동안은 한 달에 한 번 복지관에 말해 이발을 해왔는데 신청자가 밀려 못하기 일쑤였다. 그게 안쓰러웠나보다. 덕분에 이발도 꼬박꼬박 하고 염색도 세 달에 한 번 한다. 전에 못 누리던 호사(豪奢)다.
의지할 피붙이도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도 마땅히 없는 내게 민정씨의 출현은 작은 기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녀에게 "내 여동생 보다 낫다"고 말한다. 내게 가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위로 누이가 한 명, 배다른 여동생이 하나 있다. 결혼한 누이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중풍을 맞아 나를 돌볼 처지가 못 된다. 여동생은 출가한 이후 왕래가 뜸하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명절에도 그는 나를 위해 만둣국을 끓여주고 간다. 근무일이 아닌 일요일에도 집에 들러 말동무를 해주고 끼니를 챙긴다. 고맙다고 말하면 '15분 거리에 사는데요. 뭘'이라며 웃어넘긴다. 솜처럼 젖은 내 몸과 씨름하고 밥을 떠먹여주고 그녀가 받는 돈은 시간당 6500원. 하루 4시간으로 유급 간병시간이 정해져 있어 한달 내내 고생하고 손에 쥘 돈이 빤한데도 '시간외근무'를 자청하는 그가 고마울 뿐이다.
2011년 2월엔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혼자 현관을 지나가다가 신발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머리가 자꾸 아팠다. 2~3일 동안 누워 지내면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보다 못한 민정씨가 119를 불러 강원대학교 병원으로 나를 옮겼다. 의사는 '큰일 날 뻔 했다'며 '머리가 터져서 피가 고였으니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받고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차 내고 프로필에 '파업', "삼성 망한 듯"… 내...
나는 8년 후를 걱정한다. 민정씨는 65세가 되면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한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은 근무 연령제한 때문에 65세까지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늘어놓으면 그녀는 "반찬 골고루 드시고 술 좀 그만 드셔야지 그래야 오래 산다"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게 관심인 것을 알기에 그 소리가 싫지 않다.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4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기 위한 취지로 1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1월부터는 2급 장애인으로 서비스 대상범위를 확대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7월말 현재 이 서비스를 받고 있는 수급자수는 5만8900명에 달하며 3만6400여명의 활동보조인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신청자를 대상으로 신체상태, 가족상황, 직장생활 여부, 생활환경 등을 조사한 뒤 서비스시간을 결정한다. 한 달 기준으로 최소 47시간, 최대 391시간을 제공하며 이 서비스시간은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