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속도 'F1심장'은 '르노의 배짱'으로 달린다
-대중차 유일 F1 엔진 공급 '르노 스포츠 F1 연구센터'를 가다
르노는 대중차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F1 머신 엔진을 개발, 생산하고 있다. 르노는 1만 제곱미터 규모의 부지에 F1 엔진을 설계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프랑스 유일의 F1 연구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파리 남부 근교에 위치한 르노 F1 머신 공장 전경.
지난 1일 프랑스 최대 자동차 기업 르노 F1 기술의 산실인 비리 샤티용 센터(Viry-Chatillion)의 정문에 들어서자 평범한 중견기업 공장건물이 눈에 띄었다. 3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F1 연구소라는 명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르노 스포츠 F1'이라는 입간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F1엔진 설계, 테스트과정을 둘러보는 동안 애초에 느꼈던 감정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빠른차의 F1엔진을 개발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F1 엔지니어들의 진지함과 열정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2대의 F1 머신이 나란히 기자를 반겼다. 르노의 사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출입구 왼쪽의 파란색의 F1 머신은 세계 최고의 레이서로 손꼽히는 페르난도 알론소가 지난 2005년 F1 그랑프리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는데 공헌한 주인공. 치열한 레이싱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구소 한 켠에 전시돼 있었지만, 치열한 승부를 펼친 노장(老將)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르노의 스포츠 F1 본사와 연구센터는 프랑스 파리 남부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1만 제곱미터 규모의 부지에 F1 엔진을 설계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프랑스 유일의 F1 연구센터다. 현재 250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으며, F1엔진 테스트 벤치만도 10개에 달하는 최대규모의 시설이다.
이 곳에서 설계돼 테스트를 마친 엔진은 영국에 있는 르노 F1공장에서 생산해 8명의 레이서들에게 공급된다. 연간 공급하는 엔진의 개수는 64개로, F1 엔진 시장의 3분의 1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세계 최고의 엔진 설계 = F1 엔진개발은 각종 첨단장비를 활용한 설계에서 시작한다. 르노 스포크 F1 설계과정은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있으나 모든 부서가 긴밀하게 협조해 효율적인 설계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지난 2010년 조직개편을 통해 F1엔진만을 개발하는 연구소로 전환, 18개월만에 신형 F1엔진을 내놓을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현재 설계부서에서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엔진은 RS27 8기통 2400cc 엔진이다. 이 엔진의 최대 출력은 750마력, 2개의 전기모터의 순간 출력을 더하면 순간 최대 출력을 830마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일반적인 고성능 세단이 4000~5000cc 엔진을 달고 450~500마력의 힘을 내는 점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힘이다. 회사측은 이미 상당부분 개발을 완료하고 조만간 각 레이싱팀에 엔진을 공급할 계획이다.
르노는 스포츠 F1 연구센터가 개발해 실제 F1 그랑프리에서 검증한 최신기술을 올해부터 양산차에 적극 적용할 계획이다.
나탈리 피옹세트 홍보책임자는 "F1 머신에 적용한 엔진과 기술을 상용차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상용차 모델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F1 레이서에게 공급하고 있는 엔진 등 각종 첨단기술은 프랑스와 유럽연합의 규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상용차에 변형 적용이 가능하다. 이미 F1 그랑프리를 통해 성능이 확인된 연료직접분사시스템을 비롯해 진보한 브레이크 기술 등은 현재 상용차에 널리 적용하고 있다.
◇F1 엔진의 산실 '테스트 벤치' = 설계센터와 디자인 센터를 둘러본 이후 연구소 개발과정의 최종 단계인 '테스트 벤치'를 보기 위해 연구소 지하로 향했다. 지하로 들어서자마자 엔진의 '포효(咆哮)'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영암서킷에서 들었던 F1 엔진 특유의 배기음 소리와 같다.
이 연구센터는 현재 12개의 테스트 벤치와 동력테스트기기(DYNO)를 갖추고 있다.
올해 주력으로 개발중인 RS27 8기통 2400cc 엔진의 성능과 각 부분품의 내구성이 각 테스트 벤치를 통해 검증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르노 스포츠 F1 연구센터는 부품테스트기기, 정상상태 동력테스트기기, 동적성능 테스트기기, 종합 테스트기기 등 4가지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테스트 기기는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16개의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디지털 정보를 제공한다.
테스트는 매주 시험일정을 세밀하게 조정해 통상 매주 4~5일 동안 하루 12시간 동안 진행한다. F1 그랑프리 경주가 있는 주에는 경주 트랙 정보를 미리 입력해 실제 조건과 비슷한 환경에서 구동시킨다. 각 엔진은 실제 경기의 최대 주행거리인 2500km까지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야 비로소 엔진공장을 거쳐 F1 레이서에게 전달된다.
나탈리 피옹세트 홍보책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엔진개발과정을 개편해 설계부터 양산형 모델을 확정하는 과정을 18개월까지 단축했다"며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거치고 있는 만큼 레이싱팀과 레이서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전했다.
◇대중차 브랜드 중 유일한 F1 = 자동차 기업이 F1머신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엔진 하나를 개발하는데 1000억원 가량의 투입된다. 하지만 투입된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다. 르노의 F1부문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2007년 이후 유로존에 불어닥친 경기침체는 르노의 F1부문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쳤다. 유럽발 재정위기는 르노를 F1 머신 제조업체에서 엔진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사업부문을 축소하는 대신 외부 전문업체와의 협업체제를 구축한 것.
하지만 르노는 F1 스포츠에 거는 기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일본차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 도요타와 혼다 등 대중차 브랜드가 F1 스포츠사업에서 잇달아 철수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지만 F1 스포츠를 통해 만들어지는 유무형의 가치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나탈리 피옹세트 홍보책임자는 "F1 스포츠를 통해 1을 투입해 6을 얻을 수 있다면 사업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연간 400만명 이상의 관람객과 6억명의 시청자를 보유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에 대중차 중 유일하게 '르노'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랑스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자신했다.
르노는 올해도 새로운 엔진을 앞세워 F1 그랑프리에 참가한다. 12번째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쥐는 진기록 달성여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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