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캠페인성 TV광고 화면에 자막이 뜬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나요?" 모두가 "물이 된다"고 말할 때, 한 어린이가 엉뚱한 대답을 한다. "봄이 와요."
동심이 떠올린 틀 밖의 생각이 가슴을 흔든다. 우리는 언제부터 마음의 창을 닫고, 상상의 날개를 접은 채 보이는 것만 말하기 시작했을까. 돌아보면 누구나 생각이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되고, 꽃이 피고, 시내물이 흘러 가기도 했다.
그런 시절도 잠깐, 어느 날 문득 그것은 모두가 말하는 정답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답은 오직 하나뿐이며, 남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배운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생각은 틀 속에 갇힌다. 암기식 교육의 위대한 성취다.
틀 안의 생각은 세상과 부딪치지 않는다. 고요하고 편안하다. 세상을 흔드는 것은 틀을 벗어난 생각과 튀는 행동이다. 흔들려야 바뀐다. 편안함을 거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남다른 생각과 용기 있는 도전이 만들어냈다.
혁명가만이 새 역사를 쓰는 것은 아니다. 허허벌판 백사장 사진 한 장으로 배를 판 정주영 현대 창업자나, 청와대 경제수석이 결사 반대하는 반도체 사업을 밀어붙인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어떤가. 상식을 뛰어 넘은 발상이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꿔놓았다.
100년 전, 살벌한 '도살장 풍경'이 생산공정의 혁명을 부른 불씨가 되었다. 도살한 소가 천정의 이동활차에 매달려 돌아가고, 인부들은 서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이를 목도한 기업인이 무릎을 쳤다. 스테이크 대신 공장을 떠올렸다. 돌아가는 활차에서 고기를 바르듯 움직이는 작업 라인에서 부품을 조립한다면! 포드자동차 창업자인 헨리 포드였다.
1913년 디트로이트 공장에서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조립된 자동차가 탄생했다. 조립시간은 12시간30분에서 단 93분으로 줄었다. 차 값은 3분의 1로 떨어졌고, 노동자 임금은 배로 뛰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중산층의 확대로 이어졌고 미국은 세계 제조업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복지 자본주의' 또는 '2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포디즘(Fordism)의 출발이다.
그로부터 100년. 산업과 기술은 격변한다. 2013년 새해도 산업계에 획기적 변화가 예고됐다. 스마트폰, 태블릿pc와 같은 무선 이동기기의 인터넷 접속이 유선 컴퓨터를 넘어설 전망이다. 모바일이 바꿔놓은 세상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 곳에는 사고의 틀을 깬 또 하나의 거인, 스티브 잡스가 있다.
봄을 부르는 해빙과 포드, 이병철, 정주영, 잡스를 거쳐 현실로 돌아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누구나 창의와 독창성을 말한다. 용기와 도전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무기는 스펙과 학력, 토익점수다.
박근혜 새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오묘한 이름의 정부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더 이상 '암기식 낡은 경제'만으로는 나라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리라 믿는다. 이름은 단순 명쾌한 것이 최선이지만, 의지를 담겠다면 시비 걸 생각은 없다.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공룡 부처가 될 것이다, 주무를 예산만 수십조원이다, 순수과학과 실물산업이 얽혀 제대로 돌아 가겠느냐ㆍㆍㆍ.
그런 걱정은 정부 책임자와 전문가들의 몫이다. 과학 문외한인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미래와 과학 사이에 끼어 있는 '창조'다. 고정된 틀을 깨는 열린 마음과 튀는 발상, 용기 있는 도전이 없다면 창조도 없다. 창의가 죽은 교육, 나와 다른 생각을 죽이는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와, 창조와, 과학을 말할 것인가. 미래창조과학부, 과연 이름값을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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