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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새 서울역장과 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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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역에 내려, 서울역 지하철에서 꿈처럼 사라진 엄마.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다. 서울역은 오랫동안 상봉과 이별의 상징이었다. 그 곳은 수도 서울의 관문이자 얼굴이었고, 역사 주변은 만남과 헤어짐, 설렘과 쓸쓸함이 뒤섞여 맴돌았다.

세월은 서울역의 표정을 바꿔놓았다. 전국을 반나절에 오가는 고속철. 패스트푸드점과 쇼핑몰, 예식장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 속도의 시대, 낭만은 없다. 역은 소란하고 건조하다. 다만 한국 철도의 상징이라는 위상만은 여전하다. 하루 이용객 30만명에 연간 수입 4800억원으로 코레일 전체의 16%를 자치한다.
그런 서울역의 얼굴이 지난주 바뀌었다. 초록색 넥타이에 제복 차림의 신임 서울역장 얼굴이 여러번 언론에 등장했다. 새 역장은 고졸 9급 공채로 출발, 25년 만에 1급인 서울역장 자리에 올랐다. 서대전역장, 전략기획실 평가팀장, 노경지원처장, 문화홍보처장 등을 두루 거쳤다. 깔끔하고 적극적이란 평에 별명은 '악바리'다.

이력에서 맹렬 직장인의 공력이 묻어난다. 하지만 신문방송에서 요란을 떨 만한 스토리는 아니다. 분명 다른 게 있을 법하다. 맞다. '112년 만의 첫 여성 서울역장'-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다. 1900년 역이 생긴 후 줄곳 그랬듯 남성간부가 그 자리에 앉았다면 신문 인사란 한 줄에 그쳤을 게 분명하다.

언론은 새로운 이야기에 목 마르다. '100년 만의 첫 기록' 정도면 끔뻑 죽는다. 언론이 찾아낸 것은 '신임 서울역장'이 아니라 '첫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씨다. 인터뷰를 한 기자의 관심도 그랬다. 첫 여성 서울역장이란 기록, 남성 전유물이었던 자리, 섬세한 리더십….
하지만 당사자인 김양숙 서울역장의 반응은 의외다. '여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느낀 경이로움이다. 기자가 "첫 여성 서울역장이란 역사를 세웠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서울역장 자리에 충실하겠다." 그렇다. 그는 '여성 서울역장'이 아니라, 그냥 '서울역장'인 것이다. 그런 생각과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의 변화가 그를 서울역장에 앉혔다. 코레일의 새 역사는 그렇게 쓰였다.

김 역장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112년만의 첫 여성 서울역장'이라 난리인데 정작 본인은 왜 여성을 내세우지 않는가" "코레일은 힘차고, 딱딱한 인상 때문인지 여직원이 매우 적다. 여성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특정부서를 피하거나, 남녀의 일을 구분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여성'이 화제에 오르는 게 어찌 서울역장뿐이랴. 대통령 선거판도 '여성'이 화제고 여성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대선 주자만 박근혜, 심상정, 이정희 3명이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이다. 세상은 누구도 여성이니까 된다,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경쟁의 조건에서 남과 여를 따지지 않는 동등의 패러다임이 자리 잡은 성숙한 사회다.

정치권만은 다르다. '여성'을 싸움의 잔기술로 이용하려 한다. 유력 여성 후보를 낸 여당은 여성 대통령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자가발전'에 열 올린다. 상대편은 '그가 여성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공박한다. 국민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개그 수준의 논쟁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흑인 대통령의 당위성'을 강조했다거나, 독일의 여장부 메르켈 총리를 향해 '여성을 위해 뭘 했느냐'고 따졌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새 서울역장 김양숙씨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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