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지난 17일 한의사 7000여명이 서울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천연물신약은 한약을 캡슐에 담은 것일 뿐이므로 양약이 아니다"라며 천연물신약 정책을 백지화 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합리적인 주장일까.
천연물신약은 한약처방을 현대 의약학적 방법으로 규격화 한 것이다. 식약청 심사를 거치며 병의원에서 의사 처방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7개가 개발됐고 앞으로 더 쏟아질 전망이다.
반면 한의원 한약은 그 성분과 효능을 한의사 본인만 알고 있는 일종의 '비방'이다. 같은 이름의 처방이라도 한의원마다 달리 만든다. 때문에 환자들은 어떤 한의원 약이 잘 듣더라는 입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여러 한약처방 중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됐음을 국가가 보증하는 게 천연물신약인 셈이니, 환자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더 많은 한약을 천연물신약으로 과학화 하는 것은 국민 건강에 도움 되는 일이며 권장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천연물신약의 광범위한 사용은 한의사들의 수입 감소와 관련 있다. 자신들이 독점하던 것을 제약회사 그리고 양의사와 나눠 갖는 꼴이므로 불편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정부가 한의원 첩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하자 반대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첩약 건보적용은 약사와 수입을 나누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천연물신약 논쟁은 의약품의 올바른 분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한의사들의 수입, 역할범위 등 밥그릇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약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사용, 건강보험을 활용한 접근성 강화는 국민 건강에 이로운 일인 만큼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한약을 잘 모르는 의사들이 처방하면 국민 건강에 악영향이 온다"거나 "식약청 약사들이 제약자본과 결탁해 만든 제도" 등 근거 없는 주장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직능의 업무범위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의사도 약사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범용화 된 기술에 대한 독점권에 집착하기보다는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해 그에 합당한 비용을 사회에 정당하게 요구하는 게 자신의 직능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지금이라도 한의사들은 국민이 자신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면을 신뢰하는지 돌아보고 그에 맞는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세월 좋던 시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선배들 탓이다. 이제 와 식약청을 폭파하겠다는 식의 협박으로 난국을 타개해보려 한다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한의사들이 논란을 일으킬수록 의료일원화 즉 한의사와 양의사 면허를 통합하자는 논의만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수천년간 내려온 우리의 전통의학은 내부 에너지가 아닌 외부의 강제적 힘에 의해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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