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중국 산시성(陝西) 시안(西安) 출신의 시골 역사학자가 중국 정부의 경제 ‘브레인’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차기 중국 지도부의 명실상부한 ‘실세’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왕치산(王岐山·64) 중국 국무원 부총리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왕치산 부총리의 급부상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중국 지도부의 몇 안되는 ‘금융통’이자 시장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남부 광둥성의 금융회사들까지 도산하자 40억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 외국인 투자자들이 당시 금융위기 진화를 위해 부성장으로 부임한 왕치산을 찾아왔다. 이들의 정부 구제금융 지원 요구에 왕치산은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도태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 아니냐”는 답변이었다.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농업정책전문가가 된 그는 1988년부터 중국 농촌신탁투자공사 당위원회 서기로 일하면서 금융전문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건설은행행장,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경력을 쌓아간 그는 상하이·선전에 증권거래소 설립을 주도했으며, 1997년 광둥성 금융위기 때는 외국 투자자들과의 협상을 이끌고 중국 최초 국유 금융회사인 광둥국제신탁투자공사의 파산도 처리하면서 당시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신임을 얻었다.
2003년에는 베이징에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자 이를 수습하라는 ‘특명’을 받고 하이난(海南)성 서기로 임명된 지 5개월만에 베이징 시장으로 부임했다. 왕치산은 국제보건기구(WHO) 등 외부 지원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시 당국이 상황을 은폐한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방송으로 사과하고 정확한 정보 공개를 지시하는 등 사태를 해결해 ‘소방대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미국·중국 전략경제대화 등을 통해 왕치산을 만난 미국 관료들은 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은 “왕치산은 폭넓은 식견과 결단력이 있으며 항상 연구하는 인물로, 미·중 두 나라가 경제적 성공을 위해 서로 필요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기 때마다 실력을 보여준 왕치산은 차기 중국 지도권력의 핵심부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국무원 총리 자리에 리커창이 아닌 왕치산이 유력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권력서열 2위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차기 위원장에 그가 앉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의 청리 중국정치전문가는 “왕치산의 재능은 단지 금융 분야에 그치지 않으며, 사법체계 개혁에 대한 중요성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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