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이런 제안은 다소 의외였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걱정할 필요없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직접 구직자가 되어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보도 저널리스트 출신이니 직종은 홍보직이 가장 걸맞아 보였다. 결혼 전 성을 사용해 '바버라 알렉산더'라는 새로운 '노동 상품'을 창조한다. 목표는 의료보험이 제공되고 연봉 약 5만달러를 받는 중산층의 일자리다. '노동의 배신'을 쓸 때 3년간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으로 일했던 것에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그리 힘들 리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다음은 인맥을 쌓기 위한 노력이다. 구직자들이 모이는 지역 경제인 모임이나 임원 훈련소를 전전한다. 그곳에서 만난 구직자 중 한 명인 짐은 11년간 일하던 타임워너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구조조정당한 뒤 7개월간 구직에 매달려왔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조차 어려운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신시아는 이렇게 묻는다. "내 인생을 어쩌면 좋을까요?" 답이 안 나오는 방황을 계속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취업 박람회장을 찾는다. 교회를 찾아 하나님 대신 일자리를 구한다. 200여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서를 내고 수천달러를 날렸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결과물은 초라했다. 기본급도 복지 혜택도 사무실도 없는 보험 영업사원과 화장품 방판 사원이 유일하게 손을 내민 일자리였다.
책 곳곳에는 통렬한 위트가 있지만 결코 웃을 수가 없다. 그 위트에는 벼랑 끝에 매달린 중산층의 절망이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 시장에서 자아마저 박탈당한 상품이다. 집에 있는 시간마저 구직활동을 위해 가상의 상사를 설정하고 하루를 구획한다. 기업이 원할 만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외모부터 성격까지 개조한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이 유발한 노동의 문제는 스스로의 결함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을 파는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달리 자기 자신이 상품인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훨씬 더 심각한 심리적 강박에 시달린다. 실직 상황에 놓이면 '혐오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 인간적 존엄성 따위는 없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상황은 놀라울 만큼 한국과 흡사하다. 미국에서도 재취업에 실패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택하는 길은 프랜차이즈 업체 창업, 부동산 중개업, 수수료 없는 영업직이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시급제 일자리를 받아들인다. 에런라이크는 이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길 권유한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절망에 맞닥뜨려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는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바바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부키/1만 4800원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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