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의 독서토론모임 '무녀리', 10년째 유지해온 원동력은?
현대오일뱅크의 독서토론모임 '무녀리'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이 회사 독서경영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녀리'는 한 어미 뱃속에서 나온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를 뜻한다.
지난 5일 오전 11시 45분. 점심시간을 앞두고 십여명의 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의실로 모여든다. '무녀리'의 134번째 독서토론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모임의 선정도서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회원들이 속속 모이자 오늘의 발제자인 인사지원팀의 이민철씨가 '당신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까?'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토론 분위기는 '노숙자의 장기매매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쟁점으로 옮겨가면서 더욱 활발해진다. 이민철 사원이 먼저 "무엇을 사고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자신을 입장을 내놨다.
다양한 의견을 모두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합의들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얘기다. 결국 무녀리 회원들은 활발한 토론을 거쳐 '노숙자가 자신의 장기를 파는 데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장기매매를 쉽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무녀리의 구성원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서부터 임원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독서토론시간만큼은 상사와 부하직원이 아니라 같은 책을 읽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장지학 상무는 독서토론을 통해 업무 중 발견하지 못했던 신입사원들의 잠재적 역량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업무적으로만 대하던 신입사원들을 독서토론모임에서 만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며 "나 스스로도 권위를 버리고 생각을 유연하게 갖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녀리'는 3주에 한번 씩 이 같은 점심 토론을 벌인다. 토론은 대략 1시간 정도 진행된다. 지난 2003년 시작돼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자발적으로 참여를 원하는 회원들로 이루어지는데, 현재 35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장 상무는 "무조건 하나의 사내 동호회에 가입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30여명의 회원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다들 독서를 좋아하고 토론을 통한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사회자 없이 자유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마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처럼 여러 질문들을 던지면서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에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식으로 이어졌다. 대리모, 장기매매문제, 성매매 문제, 경제성장과 행복의 상관관계 등 토론 거리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수직적인 조직을 뛰어넘는 수평적인 토론문화'가 10년간 무녀리를 지켜온 원동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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