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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의원님, '환승입니다'란 말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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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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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재찬 논설실장]우리나라 국회의사당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곳도 없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은 역 이름이 아예 국회의사당역이다. 지하철 5호선을 탄다면 여의도역에서 내려 운동 삼아 슬슬 걸어가면 된다. 뙤약볕이 부담스러우면 시내버스로 갈아타도 딱 두 정거장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을 이용하면 대방역이나 영동포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의사당 앞을 지나는 버스 노선이 자그마치 14개다. 지하철ㆍ전철과 시내버스만 있는 게 아니다. 의사당 내 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을 거쳐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5호선 여의도역을 오가는 국회 순환버스가 20분마다 운행된다.

사방팔방에서 연결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국회의원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의원 수가 적어서 그런가. 19대 국회의원이 18대보다 한 명 많은 300명이나 되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당초 의원님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는다. 개원 초기에는 지하철ㆍ버스를 이용하거나 소형차나 경차를 직접 몰고 나오는 의원도 있다. 워낙 흔치 않은 일이라 이게 기사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얼마 안 가 대형 승용차와 접대 문화에 푹 빠져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기사(비서관 대우) 봉급에 기름값(월 110만원), 차량유지비(월 35만원)까지 죄다 국민 세금으로 대주니 안락한 승용차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특급호텔이 부럽지 않다는 2213억원짜리 새 의원회관 널찍한 방에 똬리를 튼 분들은 더욱 그럴 게다.
우리나라 의원님들은 참 이상하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그렇게 열심히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 나와 명함을 돌리며 악수를 청하고 고개를 숙이더니만 당선되고 나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재래시장과 마을회관, 노인정, 복지시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지하철이나 버스는 타질 않으니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면 우물쭈물할밖에. 이런 분들이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신용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봉급생활자에게 연말정산 때 1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자는 법 개정안을 심의할 때 과연 느낌이 올까.

대중교통 수단, 특히 지하철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다. 어느새 네 귀퉁이 경로석 열두 자리가 모자란 전동차 안에서 앉을 자리를 놓고 세대 갈등이 빚어진다. 경로석을 놓고 노인끼리 다투는 '노노(老老)갈등'도 나타난다. 누적되는 65세 이상 '지공(지하철 공짜)거사'들의 공짜 운임은 해묵은 지하철 적자 해소 방안과 함께 과잉복지 논쟁까지 불러일으킨다.

고령화와 복지 문제의 단편만 노출될까.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양극화 현상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차내 경고방송에 움찔하고 지하철경찰에 쫓기면서도 단돈 1000원짜리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이동상인들. 버려진 신문지를 한 장이라도 더 수집하려고 전동차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며 키가 닿지 않는 선반을 향해 토끼뜀질을 해대는 노인들….
KTXㆍ항공기ㆍ선박 무료 이용 등 국회의원의 특권은 200여가지다. 이를 다 누리다 보면 서민들 삶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유권자와 거리도 더욱 멀어진다.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생활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휘발유값 비싸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국회 앞 주유소는 기름 넣으려는 의원들 차량으로 문전성시다. 재정위기 여파로 흔들리는 유로존을 지키는 등불인 독일 연방의원 중에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이들이 많다.

굳이 따로 시간을 내 민생 탐방에 나설 필요도 없다. 여의도 의사당으로 출퇴근하면서 지하철과 전철, 버스를 자주 타면 민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말로만 국민을 바라보는 게 아닌,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책이 어떤 것인지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환승입니다'란 말의 의미와 그것이 던져주는 요금 할인의 기쁨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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