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막상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제12대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되자, 아니 후보에 오르자마자 한국민의 저력을 떠들며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거론한다. 김 총재는 미국 시민권자다. 그의 선출을 반대했던 일부 글로벌 언론도 그가 한국 출신 미국인임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경제 부문에서 경력상 부족한 점을 근거로 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들을 '세상에 몹쓸 언론'이라며 내심 서운해했다.
심지어 일본 기업 SBI모기지 공모청약 경쟁률은 1.81대 1에 그쳤다. 직전에 공모청약을 진행한 코오롱패션머티리얼이 700대 1을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만 중국기업 6곳, 일본과 미국, 싱가포르 등 총 9곳의 외국기업이 국내 상장계획을 중도에 포기했다. 주식시장에서 세심하고 꼼꼼한 점검과 투자는 미덕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일정 부분 부박(浮薄)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변화를 살펴보자. 골드만삭스 조사에 따르면 중국 인구의 5%인 6500만명의 연간소득은 3만5000달러에 달한다. 2009년 말 기준이다. 지난해 말로 볼 때 우리나라 약 5000만명의 1인당 연간소득은 기껏해야 2만달러를 조금 웃돌 뿐이다.
또 2030년이면 중국 증시 시가총액은 미국을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증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55%에 달할 것이란 게 골드만삭스의 전망이다. 물론 10억명이 넘는 인구에서 '그 정도 부자야 있을 수 있지'라고 의미를 축소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와 한국인의 자부심만으로 급변하는 세계 경제에 접근할 수는 없다.
히피 선동가이면서 미국 최대 노동조합 창립자인 '솔 알린스키'는 "힘이란 당신이 지닌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제력이 아무리 강해져도 주변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힘'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의 힘은 상장기업에 대한 공정한 가치평가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맡기라'고 주장해 봐야 별무소득이다. 주변에서 인정하고 좋은 기업들이 한국거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엘리베이터로 내려온다'는 격언이 있다. 투자자들은 한두 명씩 천천히 모여들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집단적으로 시장을 떠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지금 한국 주식시장은 그나마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마저 고장난 듯하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