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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주민은 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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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시계획과 관련한 정책에 어느 때보다 주민참여, 시민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필수적인 수식어로 붙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민주화를 통해 고양된 시민의식, 1990년대 중반 수립된 지방자치제도, 시민단체의 왕성한 활동 등에서 기인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아파트 및 철거형 재개발 위주의 도시개발 방식에 대한 반성과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 붐의 진정 역시 이러한 경향에 크게 일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개별 자치단체마다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주민참여형 도시계획을 정책의 우선가치로 표방하고 있다. 그동안 개별 계획의 수혜자 또는 피해자, 방관자로 도시계획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또 하나의 도시계획 주체인 주민이 그 전면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도시계획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안도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즉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도시계획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주민이 자신의 공간에 애정을 갖고 계획을 수립하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과 '주민'이라는 개념이 자신의 공간을 이용한 자산의 증식이라는 경제적 이득으로부터 마냥 순수한 주체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과연 계획의 전면에 재등장한 주민이 하나의 도시계획의 주체로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뉴타운 문제를 되짚어 보면 주민은 스스로가 자신의 공간을 직접 계획하기보다는 정치적 공약이나 행정에 이용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내세운 뉴타운 개발 공약은 당락의 주요 변수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19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지정을 어떻게 철회하고 대체할 것인가로 탈바꿈하였다. 정치인은 도시를 재생하고 개선하는 차원에서 정책 파트너로 주민을 대하기보다는 대규모 개발을 통한 부동산 추가 수익을 운운하며 먹고살기 힘든 주민을 현혹한 측면이 강했다.

행정기관은 상황에 따라 사실상 자신들의 정책 및 계획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주민을 대하는 행정 편의적 행태를 보이면서 여전히 무책임과 관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주민은 자신의 토지를 삶의 공간이란 공적 개념이 아닌 하나의 사적 소유물이자 자본이 회수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사적 기대이익을 가장 높게 제시한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 이기적 집단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구도 정주성이 훼손된 우리 모두의 공간에 대해 성의 있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면 총선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교환의 수단으로 바라본 대가로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우리의 공간에 대한 사랑의 부수물인 심리적 안정을 누릴 권리에서까지 소외당하고 있다. 우리가 정치인의 각종 공약과 개발기대에 우리의 사적 이기심을 빌미로 표를 던진다면 여전히 우리의 공간은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의 대상이 될 것이며, 우리의 공간에서 소외당한 채 계속 새로운 정주지를 찾아 떠도는 이방인이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우리의 삶의 터전을 어떻게 가꾸고 개선해 나갈 것인가는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고 선거를 통해 주민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과 행정기관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변과 이웃을 맺고 거주하는 공간에 애착심을 가지며 우리의 공간을 어떻게 가꾸어 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질문은 바로 이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합리적 이성을 지닌 국민이며,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도시에 착한 주민인가.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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