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범우사/ 9000원
'그 부인은 꽈리를 한 가지 꺾어서 내게 줬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얼마 후에 눈이 왔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했다는 사연이었다.'
이미륵의 어린 시절을 그린 '수암과 같이 놀던 시절'과 '독약을 먹은 장난꾸러기', 3.1운동에 가담했던 때를 쓴 '기미 만세의 절규 속에' 등과 같은 부분도 좋지만 맨 끝 장이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담담한듯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건 아마도 '압록강은 흐른다' 곳곳에 녹아있는 '어머니'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3.1운동 직후 고향으로 도망쳐 내려 온 이미륵에게 어머니는 유럽행을 강제한다. 이런 말과 함께 말이다.
'압록강을 흐른다'를 우리말로 옮긴 전혜린씨는 '역자 후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이미 이 책은 영역(英譯)됐으나 아직 국역(國譯)되지 못한 것이 슬픈 사실이기에 감히 번역의 붓을 들었다. 유창하고 활달한 문체며 그 아름다운 운율이며 그 깊은 여혼을 재현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인 줄 알았으나, 우선 한국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으로 시도해본 것이다.'
1899년 3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의학 공부를 하다가 3.1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미륵. 그는 일본 경찰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독일로 향한다. 1946년 독일에서 '압록강은 흐른다'를 펴내면서 이름을 널리 알린 이미륵은 1950년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다.
3.1운동에 멋모르고 뛰어든 사연에서부터 어머니 얼굴을 보면서 시위에 참가한 것을 후회했다고 고백한 내용, 압록강을 건너가면서 겪은 일들을 쓴 부분까지. '압록강은 흐른다'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차분하다. 차분하지만, 우리들의 맘을 울리기엔 충분하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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