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가 발등의 불로 떠올라 노후생활 보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전후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부머'는 모두 7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이른다. 직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매년 30만명 이상이 은퇴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이 숫자는 조만간 두 배 이상으로 늘 것이다. 상당수의 베이비부머는 부동산을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삼아 왔다. 자산운용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7%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 인구전망을 감안할 때 과거 수십년간 향유해 온 부동산가격의 지속 상승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현명하다.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금융자산과 연금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금은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공적연금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른 퇴직연금, 각 개인이 임의로 가입하는 개인연금 등 3층 구조로 형성된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포괄 범위가 가장 넓고 남은 수명 내내 수혜를 보장하는 장점에도 소득대체율이 42%에 불과하다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퇴직 전 소득의 60~70% 수준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퇴직연금은 작년 말 기준 29조원에서 금년 말에는 50조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 가입률도 30%를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도 기업과 개인의 호응에 힘입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퇴직연금의 확장을 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당초 일정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닌 노령연금의 개념으로 도입됐다. 따라서 길게 볼 때 국민연금은 단점으로 지적되는 수혜 사각지대를 좁혀나가야 한다. 또 수급조건을 엄격히 유지해 윤택한 임의가입자에 대한 급부가 커지는 등 본래 취지와 다른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보험료 인상과 급부율 축소로 기금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은 기본 수준의 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보장하고 그 이상의 은퇴수입은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호주의 사례를 보자. 1992년에 도입된 '슈퍼애뉴에이션'이란 호주 퇴직연금은 의무가입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이미 국내총생산의 100%가 넘는 돈이 쌓여 있다. 호주 국민이 예상하는 은퇴 시점의 보유자산이 평균 57만달러나 되는 것도 부럽지만 이 가운데 슈퍼애뉴에이션 비중이 74%에 달하는 점은 인상적이다. 소득대체율도 50~70%까지 된다. 보험료는 사업주가 연간 소득의 9% 이상을 부담하고 종업원이 불입하는 비중도 3%를 넘는다. 우리나라 퇴직연금도 사업주가 최소 8.3%를 부담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기존 국민연금 보험료 4.5%에 추가해서 내야 한다는 점은 불리하다.
이제 막 비약하고 있는 퇴직연금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는 몇 가지 개선과제가 있다. 우선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요망된다. 이 경우 가입자들이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중 자신의 소속기업 특성과 성향에 맞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아울러 법 개정으로 자영업자와 개인의 개인퇴직구좌(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가입 및 추가불입 허용 등으로 퇴직연금의 문호를 넓혀가야 한다. 확정기여형의 경우에도 가입자의 추가불입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늘려 퇴직연금의 규모를 키우고 은퇴 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퇴직연금을 활성화해서 고령화시대에도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 위축을 방지해야 한다.
김상로 산업은행 부행장(연금신탁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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