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과소비 이대로 안된다<상>요금구조 후진국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중국이 인건비가 (한국보다) 더 싸고 시장이 크지만 탄소섬유는 전력이 많이 필요한데 한국은 일본보다 전기요금이 절반, 중국보다 30∼40%정도 싸다." 올해 660억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에 연간 2200만t규모의 탄소섬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일본 도레이가 한국투자 결정을 밝히면서 내세운 이유다. 전기요금의 왜곡된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인투자는 현지 노동력과 입지조건,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세제상 지원에 따라 결정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값싼 전기요금이 새로운 투자메리트로 등장한 것이다.


◆전기 싸서 한국투자 확대하겠다 = 실제로 한국전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력 가격은 ㎾h당 0.058달러(약 76.6원)로 일본(0.158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미국(0.068달러), 프랑스(0.107달러), 영국(0.135달러) 등 다른 선진국보다도 싸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수치가 없어 비교할 순 없지만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비싸지만 전력품질은 훨씬 낮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전체 전력판매의 60%가량을 점유하고 있으며 최근의 경기회복에 따라 작년 12월까지 21개월 연속 판매량이 증가했고 증가폭도 10%를 넘어 주택용과 일반용의 2배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1984년부터 2008년까지 자장면이 10배 오를때 전기요금은 1.2배 올랐다. 사실상 물가상승률은 물론이고 원가반영과 무관하게 인상이 억제돼왔다.

지난 17일 전력수요가 동절기 4번째로 정부 전망치를 상회하면서 사상최대를 경신해 전력대란을 야기시킨 것도 값싼 전기요금이 한몫했다. 우선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0년 8월 기준 전기요금은 적정원가의 93.7%에 그치고 있다. 용도별로는 농업용 36.5%, 심야전력 73.9%, 산업용 96.5%로 원가보다 낮다. 밑지고 전기를 팔고 있다.


여기에 1973년부터 도입해 큰 폭의 개편없이 시행돼온 용도별 요금제도는 전기요금 왜곡의 주된 원인이다. 적정원가율에서는 주택용이 산업용보다 낮지만 실제 판매가격에서는 산업용(도매로 이해하면됨)이 더 싸게 판매되면서 이른바 교차보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주택용에서 전기를 팔아 남는 수익을 떼어내 산업용 농업용의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다. 특히 가정용 전기요금은 누진제를 적용해 처음 100kwH까지는 56.20원/kwH이지만 500kwH 초과 시 656.20원/kwH이다. 사용량보다 전기요금이 더 높게 부과되는 구조다.

◆전기난방, 누진제 폭탄으로 돌아와 = 이 때문에 최근 무턱대로 전기난방을 사용하던 가정에서 평소보다 2~3배 이상의 전기요금이 나왔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전에 따르면 주택용 전기요금 흑자액은 2007년 3534억원, 2008년 4185억원, 2009년 523억원 등 최근 3년간 총 8242억원에 달했다. 이는 고스란히 전기요금 구조가 적자인 산업용에 지원됐다. 같은 기간 산업용은 1조2000억원을 교차 보조받은 것. 기업별로는 굴지의 대기업 수 곳이 간접적으로 300억∼400억원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금 현실화에 실패한 한국전력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전의 영업적자는 2008년 3조6592억원, 2009년 5687억원, 2010년 1조8764억원(3분기 누계)에 달했다. 지금까지 전기요금으로 인한 누적적자규모는 30조원에 육박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두다 보니 가스나 등유 난방이 지속적으로 전기 난방으로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0년 기준 2002년 대비 등유와 도시가스는 각각 98%, 43% 인상됐지만 전기요금은 12% 오르는데 그쳤다. 이에 전기소비는 49% 증가한 반면 등유는 55% 감소했다. 이에 따라 난방을 위해 전기를 사용하는 수요가 겨울철 전력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17.8%에서 지난해 24.4%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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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이하 전기요금 현실화 대두 = 정부도 문제를 알지만 손을 데지 못하고 있다. 요금이 오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작년 지경부에 제출한 '전력산업구조 정책방향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 "적정 이하의 낮은 요금이 전기 과소비에 따른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며 "원가보상률 이하의 낮은 전기 요금이 소비구조 왜곡을 비롯해 투자 회피, 자본비용 증가 등으로 이어져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는 이를 위해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으로 구분된 현재의 전기요금체계를 전압별로 통합해 운영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미 4차례 체계개편을 통해 종별간 요금격차가 많이 완화돼 1~2차례 정도의 요금 조정을 거치면 종합원가보상률을 기준으로 한 전압별 요금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전기요금 현실화는 물가 문제 때문에 당장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하면서 길게 보는 로드맵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경부도 오는 7월부터 원자재(유연탄, 유가 등)에 따라 전기요금을 연동하는 원료비연동제를 시행하고 전력사용량에 따라 누진율을 높이거나 2012년부터 용도별 요금제를 전압별로 바꾸는 방식을 준비 중이다. 주택용은 220볼트(저압)로 전체 가구의 72%, 사용량의 14.5% 수준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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