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이 CEO에게 말하길..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당시 조선 백성들은 몇 해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해 기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돕기 위해 파병 나온 명나라 군사들에게는 밥은 물론 술까지 제공됐습니다. 당시 기록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명 군사들이 술에 취해 토해 낸 음식물 찌꺼기를 주워 먹으려고 조선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몸싸움에서 밀린 백성은 그 마저도 못 먹었었다는..."
조일전쟁(임진왜란) 당시 참혹한 풍경이다. 이 와중에 선조는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피신하고자 했다. 나라를 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선조가 이 같은 판단을 한 사실은 실록에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 백성 가운데 절반이 왜군에 가담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고 한 신하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당시 민심은 조선 조정, 정확히는 선조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선조가 궁을 버리고 도망가자 도성의 백성들이 경복궁에 달려가 불을 질렀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고 했다.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시절이었다.
휴넷이 주최하고 아시아경제신문이 후원하는 명사 CEO(최고경영자) 조찬포럼의 강사로 나선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선조를 '실패한 왕'으로 규정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관료들에 둘러싸였던 탓'이었다. '눈앞의 살길에만 급급해 후세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실패한 CEO의 전형이었던 셈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왕 독살사건' 등 다양하고 색다른 시각의 역사서를 저술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이 소장은 CEO들에게 조선의 왕을 귀감으로 삼을 것을 조언한다.
조직 내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삶이란 규모와 시대를 초월해 비슷한 공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소장에 따르면 태종과 정조는 자력으로 성공한 왕이고 선조와 고종은 실패의 전형이다. 구분법은 간단하다. 성공한 왕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몸소 지식경영을 실천했으며, 개혁을 통해 인재를 등용했다.
반면 실패한 왕은 과거에 매몰돼 변혁을 두려워하고 실리보다는 명분에 집착한다.
이 소장이 조선의 대표적인 '성공 CEO'로 꼽은 태종은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칼’보다 ‘글’을 택했다. 무골인 장남(양녕대군)을 후계자로 삼는 대신 책을 가까이 하는 셋째(충녕, 훗날 세종)를 왕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자신은 손에 피 묻히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태종은 조선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래를 위해 악역을 자처한 지도자”였다고 이 소장은 평가한다.
태종은 ‘왕자의 난’에서 자신을 도와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처남 4명을 처단하여 외척의 발호를 막았다. 이어 최측근인 이숙번, 그리고 세종의 장인인 심온까지 제거해 세종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준다. 세종이 뜻을 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태종이 있었기에 ‘세종시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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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장이 꼽은 또 한 명의 성공한 조선 CEO, 정조 역시 불운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눈을 돌렸던 인물이었다. 아버지(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노·소론 신하들을 모두 내치지 않고 국가경영에 필요하면 손을 잡았다. 그러나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남인은 물론 서자 출신 지식인들을 폭넓게 등용해 조선의 중흥을 꾀했다.
이 소장은 강연 말미에 정약용 이야기를 꺼냈다. 유배지에서 보낸 기간이 벼슬했던 시기보다 길었지만 역사 속에 두고두고 기억하는 인물이 된 건 그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강조한 '가치경영'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사진 = 안영준 기자 linus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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