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빨라지고 주민부담 줄어드나 들여다보니..


[아시아경제 정선은 기자]“제도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준비가 미흡한 채 전면시행한 게 잘못이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폐단을 막는 '구원투수'로 도입된 공공관리제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 조합들은 최저가입찰 폐지로 용역비가 오르고 서울시에서 대출 받는 조건도 까다로워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불만을 호소한다. 민간에서 공공으로 부정부패가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건설업체는 늦어진 시공사 선정으로 '일감 부족'을 초래한 데다 모든 내역을 빠짐없이 적는 입찰 방식이 아파트 품질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며 볼멘소리다.

시행 4개월 된 공공관리제 '보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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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 입찰 폐지로 부담금 ↑..서울시 담보대출 '비현실적'


설계비 입찰방식이 최저가입찰에서 입찰 참여 업체들의 평균금액으로 바뀌면서 주민부담금이 크게 늘어났다. 최대·최소값을 제외하니 기존 금액보다 두 세배가 늘어나기도 했다. 정비구역이 약 20만㎡인 한 재개발 조합을 가정할 때 ㎡당 금액으로 최저가 기준보다 1만원씩만 설계비가 올라도 조합원 부담금은 무려 20억원이 늘게 된다. 서대문구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공공발주하고 조합이 경쟁입찰로 업체를 선정하면서 용역비가 늘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사업비 대출도 현실과 동떨어진 담보요구로 받기가 쉽지 않다. 공공관리제 시행 후 사업비 대출 신청 건수가 4건에 불과하다. 53%의 조합원 동의를 받아 가까스로 추진위원회가 승인된 용산구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조합이 만들어져도 보증을 서줄까 말까인데 추진위는 더욱 대출받기 어렵다"면서 "추진위가 나중에 조합되면 다 승계하는데 넉넉하지 않은 재정에 문까지 좁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들의 운영비 부담은 만만찮다. 공공관리제 도입 전에 조합설립을 마쳐 적용을 피해간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주민총회 한번 하려고 편지 한 통씩 보내는 것부터 다 돈이다"라면서 "재개발하는 동네 사람들이 넉넉할 리 없는데 구청에서 융자지원 받는 것은 거의 등용문 오르는 것과 같다더라"고 탄식했다.


공공관리제의 투명성과 전문성 확보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공공관리제 되면 조합 대신에 관(官)으로 로비가 들어올 것"이라며 "구청장이 정치인인 경우가 많은데 전문성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잘 조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건설업계, '수주가뭄'에 설계도면대로 시공땐 '품질저하' 우려


9월말 '수주전쟁'을 마지막으로 서울지역의 시공사 선정 물량은 끊긴 상태다. 공공관리제로 시공사 선정시기가 '조합설립인가 이후'에서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건설사들은 '일감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사업이 진행되려면 업체들이 용역을 해야 하는데 돈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으니 진행이 안되고 지체된다"라고 말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1년을 기점으로 서울에서 시공사 선정이 예상되는 사업지는 약 44곳으로 추산된다.


주택정비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도입된 '내역입찰제'는 오히려 상품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내역입찰제는 공사비는 물론 사업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적은 내역을 공개해 경쟁입찰하는 제도로 공공 건설공사에 주로 적용된다. 시공자는 설계자의 도면대로 내역을 산출해 입찰하면 조합원은 총회를 통해 각 업체들이 제시한 내역서를 비교해 최종 시공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세부적인 내용 없이 3.3㎡당 분양가만 제시했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공사들은 주동출입구·주차폭같은 부분도 주민이 더 편리하게 생활하도록 고려하는데 설계자 도면대로만 견적을 뽑으면 그런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사업시행인가 전에 시공사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변경인가를 해야한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관계자는 또 "3.3㎡당 단가계약도 아니고 '철거 OO원'식으로 공사비 구성내역을 내야 해서 물량의 증감에 따라 발주자 책임이 된다"고 토로했다.


철거작업을 도맡는 업체들의 불만도 있다. 한 전문건설사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핵심은 철거와 이주보상"이라면서 "아직 시공사 선정 전이라 드러나지 않지만 나중에 본격화 되면 철거와 이주 등을 둘러싼 민원문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도 "규모가 작은 설계사나 정비업체 직원들은 이전에도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수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업시행인가 이후까지 고통이 늘어날 수 있다"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시범사업지구도 성공 롤모델 못 돼.. 서울시 "정착까진 기다려야"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은 공공관리제의 취지는 동의하면서도 전문성이 전제되지 않은 전면시행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현재 15곳만 공공관리제 전담부서가 마련돼 있다. 그나마 부서에는 한두명이 일하는 곳이 많다. 공무원들이 수십 개의 사업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재개발 조합관계자는 "조합에서는 의사결정이 1주일이면 끝날 것을, 지자체 선거 후 재개발사업을 잘 모르는 사람이 새로 와서 더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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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안착여부를 떠나 공공관리제가 혹평을 받는 원인은 성과에 비해 제기되는 문제가 많다는 데 있다. 1차 시범사업지구로 선정됐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구청에서 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매뉴얼 같은 것을 돌리고 설명도 잘 해주니 불만은 없다"면서도 "우리가 시범사업지구니까 성공 롤모델로 만들어야 할텐데 그게 안 되고 있으니 문제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관리과 관계자는 "추진위나 정부계획 수립절차가 다소 지연될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프로세스로 볼 때 문제가 없다"면서 "일률적으로 25개 자치구가 동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 개수·전담인력·구청장의 의지 등이 종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은 기자 dmsdlu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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