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 아버지의 희망퇴직
[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여보, 나 이번에 희망퇴직 신청할까봐. 일도 힘들고..이 나이에 눈치 보면서까지 다녀야 겠어? 조건도 좋다니까.."
어렵게 꺼낸 말에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하긴, 말은 툭 내뱉었지만 내 진심은 아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다. 자책감과 박탈감만 커질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상보다 신청서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영업실적이 나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입행 동기 A지점장, 본점에 있다가 영업지점으로 발령난 후배 B부부장도 진작 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하다. 무엇보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 생각이 난다. 학자금 문제는 둘째다. 아직 예민할 나이인데 우리 아빠가 직장을 잃었다고 행여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위축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대학 다니는 큰 딸 시집 갈 때까지만이라도 번듯한 직장에서 든든한 배경이 돼 주고 싶었다.
구조조정···조직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겐 평생직장 이었는데...수 많은 지점을 이동하며 만났던 동료, 유난히 기억에 남는 나만의 평생 고객, 어느 순간 빨라진 손놀림과 꼼꼼해진 성격...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나의 지난 오십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고 내 인생 어디 하나 안 걸치는 데가 없다.
퇴근길에 축 늘어진 어깨에 한숨을 내쉬고 있는 한 중년 남자. 혹시 저 사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답답함에 무작정 말을 걸어 보고도 싶다.
희망퇴직 마지막 신청일. 양복 주머니에서 며칠을 만지작 거리던 봉투를 내밀었다.
문득 첫 출근날이 생각난다.
빳빳하게 와이셔츠 날을 세워주시던 어머니. 처음 승진 했을때 우리 아이가 복덩인가 보다며 임신한 아내가 어찌나 좋아했던지..그날 아침 아내가 달아줬던 국민은행 배지가 양복 깃에서 반짝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온다.
넥타이도 풀어야 한다. 가끔씩 울컥 하더라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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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남이라 부를 수 없는 우리 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 힘내세요. 어떤 모습이든 당신은 자랑스러운 가장이십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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