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왜 비둘기들은 유독 내 텃밭만 노리는 걸까..."


장마가 몰려들기 시작하고서야 콩들이 싹을 틔웠다. 심은 지 열흘째다. 워낙 늦게 심은 콩이라 한동안 조바심이 났다.

"콩에게도 시절이 하 수상했던가..." 땅 위의 세상을 살피느라 머뭇거렸나 ? 싹이 틔지 않을거라고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쯤 삐죽거리며 솟아 났다. 그 기다림은 은근히 길었다. 콩이 싹트기를 더 간절히 기다린 데는 조그만 사연이 있기는 하다.


텃밭 한가운데 열평 정도가 채소가 심겨져 있지 않아 풀밭으로 놓여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는게 여간 편치 않았다.

사실은 여러가지 채소를 심기는 했었다. 5월초 근대, 대파, 겨자씨, 청경채 등을 뿌렸다. 그런데 그만 실수 했다. 지난해 심다남은 씨앗을 뿌린 것이다. 채소는 나지 않고 한달이 넘도록 풀만 무성히 올라왔다. 실망스러워 제초작업 하기도 싫었다. 토마토, 고추, 고구마 등 모종한 것들을 먼저 돌보느라 늦어진 것도 이유다. 풀은 무성하고 씨앗은 나지 않고...왜 이렇게 된거지? 한참 지난 후 상한 맘을 달래며 씨앗봉지를 다시 들여다 봤다. 아뿔싸 !!...발아 보증기간이 1년이란다. 씨앗이란게 몇년 지나도 다시 나는거 아니던가 ...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종묘회사들이 남은 것을 이듬해 다시 뿌리지 못하도록 특수한 방법을 썼는지도 모른다...하여간 장사꾼들이라니...두해 지나면 발아가 안 될 수도 있다는거다. 곤지암 종묘가게에 알아봤더니 묵은 씨앗은 나지 않는단다. 종묘회사가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가더니 기어이 두해 지난 씨앗은 발아를 않는다 싶은 것이 잠시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그새 씨앗은 나기 글렀고, 음모론이 자란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나도 후회도 밀려왔다.물론 오해일거다. '진작 새 씨앗을 사다 뿌릴 걸...'


싹이 나지 않는 동안 파종 시기가 잘못 된건 아닌지, 봄철 추위가 길어져서 인지, 갑자기 농사법을 잊은건지 도무지 헷갈렸던게 화났고, 몇 푼 아낀다고 새 씨앗을 사지 않은 게 후회됐다. 禍와 후회를 동시에 갖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땅을 마냥 놀려둘 수도 없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콩이다. 콩은 이달초순에 뿌려졌다. 아직 파종하기가 늦지는 않다. 검은 콩이다. 아내가 밥 지어먹으려고 사둔 콩을 몇 줌 집어다 밭에 뿌린 것이다. 벌써 구수한 콩밥 생각이 난다. 콩서리해서 불에 구워먹는 추억도 떠오른다. 그런 생각이 잠시 후회를 잊게 했다. 다시 무엇인가 해볼 시간이 있는게 다행스러웠다.


나와 콩은 별 인연이 없는 편이다. 농사를 짓던 첫해 닷되 정도 수확하기는 했었다. 난 그 겨울 잣나무골이 폭설에 갇히자 들짐승들의 먹이로 주변에 뿌려줬다. 이후 콩만 심으면 비둘기들이 달려붙어 싹을 찍어 먹었다.두어해 비둘기에게 당하고서는 콩심기를 포기했다. 메주 한두덩이 만들어 된장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올해는 괜찮을 듯 싶었다. 벌써 이웃 텃밭의 콩들이 잘 자라는 것이 비둘기의 습격이 없었던 터다.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예외없이 올해도 비둘기들에게 당했다. 옛날 내가 추운 겨울에 먹이를 줬던 걸 안다면 그러지 말았어야했었다...이웃들의 텃밭은 멀쩡한데 왜 유독 내 밭만 침탈한 건지 희안한 놈들이다.


물론 이들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비둘기가 못 들어오는 곳에서 싹을 틔워 첫 잎이 활짝 피었을 때 모종을 내면 되기는 하지만... 번거로운 일이다. 또 파종이 늦어 요행을 바라는 맘으로(아니면 올해는 비둘기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냥 뿌렸다. 이미 이웃집 콩밭이 검증한 사실이니...


그러던 것이 아르헨티나와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저녁 퇴근해서 보니 콩의 목이 절반 가량 사라졌다. 출근하기전에 보았던 콩싹은 온데간데 없다. 도무지 양심이라고는 없는 것들 같으니... 이제 콩밭은 그냥 절반을 놀려야한다. 8월말경 김장배추를 심거나 무우밭을 만들기 전까지 나는 풀이나 매줘야할 것이다. 듬성듬성 자란 콩밭, 다 익어가는 동안 참 힘들 것 같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난다"고 ?...나기는 하지 !! ㅋㅋ 야숙한 비둘기들...그러나 어찌 콩밭 망친 것을 비둘기 탓하랴. 사실 밭을 제대로 가꾸지 못한데는 종묘회사 탓도 비둘기 탓도 아니다. 다 내가 치룰 댓가다. 禍와 원망은 또 어떻게 벗어야 하는 건지...

AD



이규성 기자 peace@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