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여세호";$txt="";$size="260,102,0";$no="200910071359363494379A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환경의 재앙 십년이십년 지속땐
결국 우리아이 질병으로 다가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는 어느덧 네 살이 되었다. 다음 주에는 만으로 세살이 된다. 마흔이 가까워 얻게 된 아이라서인지 나에게 아이는 무척 각별하다.
각별한 마음의 한 편에는 쓸쓸함이 자리잡고 있다. 마흔이 가까워 얻게 된 아이는 서른 즈음에 나은 아이보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나와 세 살 터울의 형은 아이를 일찍 얻었다. 그 아이는 어느덧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다. 늦게 낳아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 서글픔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특히 더하다.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아이의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했다. 아이 이름으로 증권계좌를 만들고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아이 앞으로 들어온 축하금들도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한푼 두푼 작은 돈들이 모여 언젠가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친환경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 역시 이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농약이 가득한 식재료들로 밥 한 끼 지어먹었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페인트 냄새가 가득한 집 안에서 몇 시간 플라스틱 장난감을 물고 빤다 해도 아이의 몸에는 큰 탈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십 년, 삼십 년 지속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유난떨지 않아도 다들 잘만 살아간다. 맞는 말이다. 오염된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가족이나 친지 중에 암환자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인병이야 부지기수로 걸리는 병이고 비만한 아이들 역시 길거리에서 숱하게 마주친다. 이런 증상들의 원인을 모두 환경에 의한 것이라 돌리는 건 무리라고 치더라도 아예 연관이 없다고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별 신경 쓰지 않고 키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도 있고 철저히 친환경만 고집하며 키운 아이가 덜컥 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럴 확률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환경에 의한 재앙에서 요행히도 내 아이가 비켜 가더라도 무분별한 우리들의 생활은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를 결국 공격하게 된다.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문제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생각되더라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 아이에게 좋고 우리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은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들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생각한 적도 많았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들여다보면서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일은 산 넘어 산이었다. 하나를 해결하기도 전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뉴스를 통해 들려오기도 했다. 슈퍼마켓 한 귀퉁이에 서서 결벽증 환자처럼 성분 표시를 보고 또 보고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다보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환경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조금 고단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 금전적인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 당장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어서 자칫 소홀해 질 수도 있겠지만 부모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씩 바꿔나갈 것이다.
소비자가 변하면 결국 생산자도 변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바꾸고 결국 세상이 바뀌는 이 긍정적인 순환은 바로 나와 당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세호, '친환경으로 키우는 우리 아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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